제 2020호외-6 호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간절히 바랐던 것은 바로 ‘노동 환경 개선’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세상을 떠난 그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직접 목격했고, 이에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하거나 동료들에게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리는 등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장시간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세상을 떠난 전태일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노동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노동자들 스스로도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 이후 50년이 지난 2020년,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과연 개선되었을까. 오늘날의 노동 환경과 노동자 대우에 대해 살펴보자.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죽음
지난 10월 8일, CJ 대한통운 소속 택배 기사가 업무 도중 사망했고, 그의 죽음이 과로사로 추정된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택배 기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화두에 올랐다. 택배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에만 10명의 택배기사가 업무 도중 사망했고, 매년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쓸쓸히 묻힐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았을까. 바로 ‘빠른 배송’을 앞세운 택배사들의 경쟁이었다. 택배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앞 다투어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총알배송’ 등 발 빠른 배송 시스템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택배 기사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난 것 또한 업무 강도를 높였다. 이와 관련된 문제가 논란이 되며 택배사들은 노동 강도 완화를 약속했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작업 현장이 더욱 열악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달 초 롯데택배는 고양시의 작업장을 모두 폐쇄하고 해당 작업장을 모두 파주집배센터로 옮겼다. 이에 택배 기사 40여명의 업무 장소도 파주로 바뀌었다. 문제는 택배 기사들의 트럭이 물류 센터의 도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크와 트럭이 60~70cm나 차이가 나면서, 택배기사들은 택배를 분류하여 차량에 싣는, 일명 ‘까대기’를 위해 허리를 잔뜩 숙이고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택배기사들은 탑차 뒷문 상단에 부딪혀 상처가 나기도 하고, 고무로 된 도크가 미끄러워 혹시라도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일을 하고 있다.
▲ 일명 까대기 작업을 하다 머리를 다친 택배 종사자 (출처: 한겨레)
열악한 노동 환경은 비단 택배 기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월, 현대제철 포항 공장에서 30대 남성 A씨가 1500도의 쇳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고장 난 방열덮개의 수리를 위해 1500도의 뜨거운 쇳물이 주입되고 있는 쇳물분배기의 뚜껑 위에 올라갔다가 뚜껑이 부서지며 추락했다. 이에 현대제철 노조는 ‘이미 지난해부터 낡고 부서진 뚜껑이 위험하므로 교체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며 ‘노후화된 설비나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할 안전상의 문제도 회사 측에 요구하거나 문제 제기하면 실제적으로 예산 문제로 이뤄지지 않거나 미뤄져 오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2015년에도 인천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쇳물분배기 안으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5년 뒤 같은 사고가 발생하자 그제야 ‘쇳물 주입 중에는 쇳물분배기 위에서 이동하거나 작업을 금한다’는 지침을 추가했다. 이처럼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제철소 등 금속 제련 업종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69명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태일 50주기, 달라지지 않은 열악한 노동 환경
이처럼 2020년 현재의 노동 환경은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의 노동 환경이 더욱 불안하며 불이익하다는 것을 설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직장갑질 119가 지난 달 19일부터 26일까지 만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하고 발표한 ‘전태일 50주기 직장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과거 대비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관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와 비교해 현재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었냐는 질문에 ‘좋아졌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6%,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1.7%였으며,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5.2%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응답을 분석해봤을 때, 긍정적 답변을 한 정규직은 51.5%로 절반을 넘은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37.8%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정규직은 현재의 노동 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노동 환경 또한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었을까.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한 달 휴일은 평균 8.25일이었지만, 실제로 받은 휴일을 분석해보면 휴일이 8일 미만이었다는 응답 비율이 정규직 21.3%, 비정규직 28%, 공공기관 종사 7.8%로 차이가 있었다. 그 중에서 원하는 날 쉴 수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45.2%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그 이유로는 사칙, 수당, 기업주 강요 등이 거론됐다. 원하는 날 쉴 수 있다는 응답은 남자·정규직·사무직·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300인 이상·고임금 노동자 군에서 많았고, 반대로 여성·비정규직·서비스직·중소기업·저임금 노동자 군에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8.05시간으로, 8시간을 초과한 근무를 하게 되는 사유로는 절반 이상이 ‘일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으며, 추가 수당을 위해 초과 근무를 한다는 비정규직이 49%에 달했다. 고용노동청이 노동자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53%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여성·비정규직·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 등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답변이 우세했으며, 고용노동청과 근로감독관을 신뢰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58.4%, 우리 정치가 전태일의 유언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63.2%가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의 노동 환경은 법적으로는 개선되었을지 모르지만, 실제 환경을 들여다본다면 노동자들에게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부담이 비정규직, 여성, 서비스직, 중소기업, 저임금 노동자 군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크게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직장갑질 119는 “50년 전 전태일 동료들의 불안과 고통은 2020년 일터의 약자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삶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노동 환경 개선과 관련된 정책 마련과 시행을 촉구했다. 또한 “오늘날 비정규직의 고통은 특수고용 노동자 상대 노조 활동 보장, 원청 사업주에 대한 사용자 책임 적용,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도입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업종 별 세심한 정책 마련 필요해
실질적인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보여주기 식 움직임을 넘어 보다 세심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사 B씨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직종별로 업무 형태가 다르다보니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발의된 법안이 택배종사자 등에 집중돼 있지만 법안을 적용받는 직군은 택배종사자를 포함해 보험설계사, 건설업계 등 10개 종 이상이다. 법안 개정과 적용에 직군별로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달 1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시위에서 민주노총 비정규노동자들 또한 노동개악 저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국회 입법을 촉구했다. 민주노총과 정의당 등은 지난달부터 ‘전태일 3법’ 입법 운동을 시작했다. 전태일 3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230만 특수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포함한다.
올바른 정책의 마련과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시행에는 많은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국민 162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택배 종사자 근로 환경 개선’에서 종사자의 과도한 근무 시간을 줄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체의 95.6%가 찬성했으며, 택배 종사자의 산재보험 의무 가입에 대해서도 95.9%가 동의했다. 또한 정책 및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배송이 지연되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에 87.2%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택배비 일부 인상에 대해서도 73.9%가 긍정했다. 해당 설문은 택배 종사자에 관련된 질문으로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얹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절대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정책 마련과 실질적인 시행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노동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
윤소영 기자·이은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