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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명인은 무사히 통학을 마칠 수 있을까요?
편집장 이소명 202210058@sangmyung.kr 상명인은 걱정과 함께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통학길이 어디서 시작하는지에 따라 고민의 내용은 제각각이겠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은 모두 같다. 가장 큰 고민은 언덕을 걸어 오를지, 버스를 타고 오를지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 택시를 탈지일 것이다. 그렇다. 상명인의 가장 큰 고역은 그토록 유명한 ‘언덕’이다. 상명대학교 언덕은 국내 대학 언덕 중 아주 높은 편으로 유명하다. 상명대학교는 입구에서 정문까지 높은 언덕을 오르고 나서도, 정문부터 후문까지 계속 언덕의 형태를 띤다. 그래서 우리 학교생활을 늘 함께하는 ‘언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작은 해(害)를 끼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상명인의 통학 이야기 우선, 상명인들의 아침 통학길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7016번 버스를 통해 통학하는 A양의 이야기이다. 주에 오전 9시 시작 수업이 2번, 오전 11시 시작 수업이 1번 있는 A양은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에서 7016번 버스를 기다린다. 그녀의 통학길에 눈치싸움은 필수이다.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은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환승 구역으로 탑승자가 많은 정류장이다. 그 전에 서울역이나 시청역에서 이미 많은 탑승자를 태운 만차 상태로 오는 경우도 많기에 기다리는 사람 중 일부만 타거나, 아예 버스가 멈추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서대문 08번 버스를 타는 B군의 이야기이다. B군은 학교 정문에서부터 도보 20분 거리에 거주하지만, 언덕을 오르기 힘들어 버스도 자주 애용한다. B군은 주에 오전 9시 2번, 10시 1번, 11시 1번 시작 수업이 있다. 10시 시작 수업에는 버스를 타기 가장 수월하다. 하지만 이번 학기 중 11시 시작 수업에는 사람이 많아 버스를 한 번도 타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종로 13번 버스를 타는 C양의 이야기이다. 평창동 스뮤 하우스에 거주하는 그녀는 주에 오전 9시 시작 수업이 3번 있다고 한다. 언덕 아래까지 다른 버스를 타고 온 그녀는 언덕 아래에서 종로 13번 버스를 기다린다. 종로 13번 버스의 배차 간격은 15분이라고 하지만 매일 아침 들쑥날쑥하기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날이면, 수용 인원이 적은 종로 13번 버스에 이미 사람을 가득 채워오거나 언덕 아래 정류장에서 길게 줄을 서야 하기에 더욱 탑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 통학길이 위험하다? 상명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던 언덕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크고 작은 ‘해’(害)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첫째, 이른 아침 시간에 언덕을 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침 운동을 한다며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1분 1초가 아까운 통학 시간에 높은 언덕을 급히 오르다 보면 건강에 무리가 올 수 있으며, 정작 집중해야 할 수업 시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실제 이야기를 나눈 학생 중 상당수가 언덕을 급히 오른 뒤 땀을 식히거나 목을 축이기 위해 수업 앞부분에 집중을 못 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둘째, 적절한 탑승 인원을 초과한 인원이 버스에 탑승하게 되면 승객들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2022년 10월에 발생한 이태원의 아픔을 기억한다면, 해당 사건과 조금이라도 유사한 일에 관해선 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10월의 아픔 후에도, 출·퇴근길 혼잡도가 220%까지 다다른 ‘김포 골드라인’ 사건이 이어 논란이 됐다. 유사한 모습을 우리 상명대학교의 통학길에서도 볼 수 있다. 상명대학교의 통학길을 체험해 보기 위해 탑승 인원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에 직접 버스에 탑승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 2023학년도 제1학기 학과별 시간표]를 바탕으로, 요일별 그리고 시간별로 상명대학교 오전 수업 수를 비교해 보았다. <표1. 상명대학교 오전 수업 비교 – 2023학년 1학기 기준> 표에 따르면, 목요일 11시 시작 수업이 52개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11시 시작 수업이 첫 수업이 아닐 것을 고려해 9시 시작 수업 통학 시간대에 맞춰 버스를 탑승하러 가보았다. # 직접 체험해 보다. 우리의 통학길 수요일 오전 8시 23분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에 도착해 7016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출근 시간대와 겹쳐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섞여 정류장 근처는 복잡한 모습이다. 남은 시간을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7016 버스의 남은 시간이 4분임을 알리고 있다. 곧 있으면 버스가 도착할 텐데 옆에 있던 상명대학교 학생은 언덕을 오르는 7016이 아닌 언덕 아래까지만 가는 다른 버스에 탑승하려는 듯하다. 이유를 물으니, “7016이 거의 만차로 올지도 몰라요. 아직 9시까지 여유가 있으니, 학교 입구까지만 가는 버스를 타고 종로 13으로 환승하려고요.”라고 답하였다. 반대쪽에는 처음 만난 듯한 3명이 짧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택시에 탑승한다. 대학생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통해 택시 탑승 동행을 구해 택시비를 나누는 것이다. ‘7016’ 숫자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정차선 도착 전인 버스 쪽으로 향할지, 정차선에서 기다릴지 고민하며 몸을 이리저리 옮겼다. 드디어 모습을 보인 버스 내부는 이미 사람이 많이 차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미 사람들끼리 붙을 틈이 없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탑승자들은 발자국을 조금씩 옮기며 익숙한 듯 새로운 탑승자가 탈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버스 안에 발을 올리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창문이 열려있고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공기 순환이 잘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였지만,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았다. 두 다리로 위태롭게 중심을 잡았다. 결사코 더는 새로운 탑승자가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음 정류장인 경복궁역에 도착하자 대여섯 명 정도가 앞·뒷문으로 더 탑승한 것 같다. 시내버스는 앞문으로 탑승하고, 뒷문으로 하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탑승하기 위해 뒷문 탑승을 상황에 따라 허용하는 듯하였다. 더 많은 사람이 탑승하자 손잡이를 잡지 않더라도, 사방에 있는 승객들로 인해 몸이 휘청이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8시 5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아침 시간이라 차가 막히고, 다음 버스에 탑승하라는 기사님의 외침에도 계속 승객이 타다 보니 기존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중간중간 옆 사람과 부딪히거나 발을 밟게 되는 등 서로가 원치 않은 접촉이 발생하였다. # 버스 안에서 불쾌함 몰리는 시간대에 버스에 탑승해 보니, 크고 작은 위험이 많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버스가 급출발 또는 급정거하여 누군가 넘어진다면 줄줄이 그 충격을 받아 내야 할 정도로 탑승객이 밀접해 있다. 그래서인지 승차문 또는 하차문과 승객 사이의 적정 거리도 확보되지 않았다. 버스 문이 닫히기 위해서는 문과 승객 사이의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정류장마다 위험해 보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사방에 있는 승객들과 계속해서 서로가 원치 않은 접촉을 해야 했다. 한 걸음마저 움직이기 어려워 서로의 몸이 닿아있는 경우를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비켜주려 발걸음을 옮기면 되려 반대쪽 사람과 살을 맞닿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고개를 돌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뒤엉키다 보니 이를 악용한 범죄가 발생할 여지가 다분해 보였다. 실제 에브리타임에서 수년째 논란이 되는 일명 ‘7016 변태남’이 있다. 그는 사람이 많은 정류장에서 탑승하여 여성 승객 뒤에 악의적으로 몸을 대거나 비비는 등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피해자가 낌새를 눈치챈 듯하면 중간에 내려 다음에 오는 버스에 탑승해 같은 범행을 반복한다. 이처럼 적정 인원을 넘긴 버스는 우리에게 크고 작은 해를 초래한다. # 가능할까요? 안전한 통학… 우리 학교 교통편에 대해 학교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2022학년도 제2차 학생회대표 총장 간담회 회의록]에서 상명대학교 출입 교통편에 대하여 질의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1. 상명대학교 출입 교통편 관련 학생회대표 총장 간담회 회의록> 결과적으로 학교는 교통편 개선을 위해 서울시와 운수 회사에 요청하여 7016 버스 배차간격을 기존보다 2분 줄였다. 하지만 셔틀버스나 버스노선 신설은 여러 문제로 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2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줬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버스 문에 신체가 끼어 다쳤다는 사람, 무더위 속 버스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는 사람 모두 우리 상명대학교의 학우들이다. 확실한 건 2분보다 더 직접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전하게 통학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할지에 관해 여러 상명인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 문헌 ] 1. 김태인,‘김포 골드라인’ 혼잡도 220%->191%…여전히 혼잡,Jtbc 뉴스,2023.06.19.,<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31298> 2. 상명대학교 샘물 통합정보시스템 > 공유와 소통 > 공유,[2022학년도 제2차 서울캠퍼스 학생회대표 총장간담회 회의록.pdf],<https://smul.smu.ac.kr/index.do> 3. 2023학년도 제1학기 수강신청 안내 및 강의시간표 공지,[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 2023학년도 제1학기 학과별 시간표.pdf], <https://www.smu.ac.kr/lounge/notice/notice.do?mode=view&articleNo=733852&srCampus=smu&article.offset=0&articleLimit=10&srStartDt=2022-03-01&srSearchVal=%EC%8B%9C%EA%B0%84%ED%91%9C&srSearchKey=smu%2C&srEndDt=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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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좋아하세요?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여태현, <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목차 中 에세이에 관한 단순한 궁금증으로부터 나는 서점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이 주는 고유한 향기와 책들이 나를 감싸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즐긴다. 베스트셀러 가판대 앞에 서서 책 제목을 구경하고, 마음이 끌리는 제목을 발견했을 때 한두 페이지씩 읽어보는 설렘이 좋다. 그렇게 내가 손길이 가는 제목을 가진 책들은 소설 아니면 인문학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사실 난 한 번도 제대로 에세이를 완독해 본 적도, 내 돈을 주고 에세이를 구입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에세이(Essay)는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을 뜻한다. 이처럼 나에게 에세이는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꼭 유명 작가가 아니더라도,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저 위로와 공감의 따스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한 위로와 공감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인 이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서 보는 에세이들의 제목은 이러하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오늘부터 성장할 나에게’, ‘나의 봄날인 너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제목만 봐도, ‘너’와 ‘나’,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는 딱 이 정도였다. 제목만 보고 느낀 이 정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에세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세이를 찾아 읽고, 에세이 속의 삶을 동경하고 닮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 정리를 하고자 무작정 버스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발걸음이 자꾸만 소설이 가득한 책장 앞에 멈춰 섰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에세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세이가 가득한 공간에 가니, 제자리에 서서 에세이 한 권을 골라 읽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서가 위치를 프린트해 와 책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순간 궁금증이 생겨,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에세이... 좋아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에세이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얼핏 당황한 듯 보였지만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기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책 위치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있던 한 여성분은 “항상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만 하고,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저를 대신하여 예쁜 문장으로 대신 정리를 해주는 느낌이라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 해주었고, 한 피디의 책을 읽고 있던 분은 “친구가 자신이 써오던 일기를 에세이로 출판한 것을 계기로 처음 에세이를 구입해 읽어보며 에세이의 매력에 빠졌어요. 평소 관심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 읽게 돼요.”라며 자기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 신간을 들여다보던 분께 질문을 드렸다, 그는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기도 했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대한 접점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쑥스러운 듯 답해주었다. 사람들은 에세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가진 사람의 발자취가 궁금하여,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읽기도 했고, 나와 같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에세이를 읽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다른 빛을 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삶이라는 무대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다. 에세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무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며 누군가에게 인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섣불리 하기 힘든 감정과 생각을 책을 통해 정돈하고 치유 받는다.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점도 이러한 이유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장르는 몰입력에서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의 책장을 보면 더 흥미롭게 읽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소설이었지만, 밑줄과 인상 깊은 페이지를 종이로 접은 부분은 에세이가 더 많았다. 마음 한구석을 채워주며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구절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에 딱 드는 소설을 하나 발견하면 그 책에 몰두하여 새벽을 달려 결말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책을 덮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은 어느 정도의 각색과 허구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을 매료하는 매력이 있긴 하나, 에세이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쓴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에세이는 독서가 힘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페이지를, 원하는 시간에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어렵지 않게 다가간다. 그렇기에 이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사회에 더욱이나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분도 약속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서점에 와 에세이 읽고 있었다고 답한 걸 보면, 언제든 편하게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에세이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세이라고 안 읽을 이유 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 나는 에세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보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에세이를 읽고, 느껴봐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또 한 번 서점에 방문하여 에세이 한 권을 들어 몇 장 들춰보았다. 나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이 적은 이야기, 책 속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쓰여있었다. 단편적인 구절과 장면을 본 것이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고, 꽤 큰 힘을 얻었다. 평소에 위로와 공감은 나 혼자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혼자서 극복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위로와 공감을 얻기보다는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거나, 소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나에게 더 솔깃하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에세이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이자 간접 경험이 되어줄 수 있겠다. 에세이를 읽으면 "저 사람은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와 같은 궁금증이 들며 나 혼자만의 사유와 사색을 시작하게 만든다. 누군가와 대면하며 나누는 대화는 생생하며 활기차고 재미있다. 다만, 매 순간 상대의 본 마음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꽤나 머리를 쓰게 된다. 나는 보통 이야기를 하는 역할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에 놓였던 것 같다. 대면으로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내 말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이 직접적으로 돌아온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을 넘어서,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생각하는 나의 성격상 이에 대해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에세이를 읽고 느꼈다. 에세이를 읽는 그 시간, 그 공간만큼은 자유로운 나만의 것이 된다. 상대와 나 사이에서 머리를 쓸 필요도, 상대의 말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그저 글의 의도를 천천히, 나의 시선에서 여유롭게 사유하고 느끼면 된다. 에세이는 독자에게 주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 것과 같이, 에세이에도 여행 에세이, 그림 에세이, 감정 에세이 등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골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마음이 이해됐다. 결국 에세이를 읽는 이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따스한 호기심에 책을 펼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에 시작한 글이었으나 글을 쓰며 에세이의 매력에 점차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마음을 울릴 에세이 한 권을 만나 여러분들 앞에 소개할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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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명예기자 한호택 * 공모글 예시 중에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게 쓰는 편지’에 대입하여 풀어냈습니다. * 아래 링크의 음악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K69cGAwks 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조지. 자네가 폴란드로 떠난 지 벌써 7개월이 되었군. 여기는 이제 장마가 막 시작되어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어. 몇 주 전부터 꼭 두 마리가 한 쌍으로 날아다니는 이상한 날벌레가 잔뜩 출현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도 곤란할 정도였는데, 장마가 시작된 이후로 물에 약한 그 녀석들이 크게 줄어서 장마에 감사하고 있다네. 방역에 대한 논의와 민원이 여러 차례 오가고 있었지만, 벌레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 자네가 새로 구했다던 일자리는 버틸 만하길 바라네. 물론 자네의 마음이야 항상 다른 곳에 있어서 영 편하진 않겠지만.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괴로움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네.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딴섬에 홀로 있는 그 느낌.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 자네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느낌이지. 그래, 나야말로 자네의 그 ‘낯선 느낌’을 잘 이해할 사람 아닌가. 알다시피 나는 3년 전에 A 대학을 그만두었고 새로 옮긴 B 대학도 인제 그만두려고 하네. 두 대학 모두 재학 당시 전공이었던 컴퓨터공학은 내가 꾸준히 공부해 왔고 그만큼 성과가 잘 나오던 분야임을 떠나서, 흔히들 말하는 ‘미래가 어느 정도는 보장된’ 분야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어. 하기야 만약 내 아들놈이 잘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음악을 하겠다는 말 따위를 하면, 과연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군가에겐 내 도전이 ‘꿈꾸는 청춘’이라는 이미지에 스스로 취해 감상적인 소리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세상 그 누가 와도 이미 결심한 나의 마음을 바꿔놓을 순 없었어. 부모님도 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찍이 그런 시도를 접은 것 같아. 자네에겐 내 결론 – 음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는 것만 전달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 올해 2월, 나는 B 대학의 신입생 환영 행사에 참여했네. 그건 정말이지 우발적인 일이었어. 평소처럼 나는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는데, 개미처럼 줄지어 강당으로 이동하던 학생들을 발견했지. 그 학생들은 생긴 모습은 모두 달라도 하나 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처음 와보는 곳에서 강당을 찾느라 눈동자가 쉼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는 것이야. 선배 된 나로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네. 아무튼 도서관에 가는 길에 강당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행렬에 동참하여 따라가고 있었고, 결국 강당 앞까지 와 버렸지. 강당 입구에는 어떤 선배 – 내겐 선배가 아니겠지만 – 가 줄 선 학생들에게 일일이 학과를 물어보고 어디 어디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었지. 나는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음악학부라고 대답했어. 그처럼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속으로는 꽤 놀라워서 그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네. 그렇게 위층의 어떤 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주변의 신입생들에게 말을 걸었네. 나는 예전부터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친해져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어.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없어서 입이 근질거렸거든.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를 버릴 생각이 없었네. 그중 나는 ‘리아’라고 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어. 대부분 신입생은, 아직 그런 대화가 낯선지, 내가 말을 걸면 피하려거나 어딘가 어색해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녀만큼은 내 전공 이야기를 듣고 먼저 찾아와서 내게 말을 걸었지. 그리고 3월, 학기가 시작되었어. 나는 호기심에 음악학부의 전공 수업을 수강했는데, 그곳에서 (나와는 달리) 진짜로 음악을 전공하는 리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 나는 지난번에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고 우리는 매주 수업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자신의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주겠다며 같은 수업을 듣는 어떤 사람을 데려왔어. ‘에그버트’라고 하는 그는 아주 큰 키는 아니지만 건장한 체격에 딱 벌어진 어깨 꼿꼿이 선 허리와, 졸려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빛나는 눈을 가진 청년이었어. 나는 그를 보자마자 우리가 친해질 것임을 깨달았지. 나는 살면서 나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는데, 그게 바로 자네와 에그버트였어. 그래, 언젠간 자네에게도 이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군. 아마 자네와도 잘 맞을 거야.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에는 매번 옆자리에 앉게 되었어.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먼저 가던 나를 그가 따라왔어. 그는 내가 음악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가르침 받을 계기가 없어서 고민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사사한 선생님을 내게 소개해 주겠다고 말하더군. 그땐 거리가 멀어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내 머릿속에 꽤 깊게 남아 있었어. 4월 중순의 어느 날, 나를 꾸준히 괴롭혀 온 ‘낯선 느낌’은 극도로 커져서 이미 나를 잡아먹은 상태였는데 참석할 수업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서 잠에서 깬 그날, 마치 스위치가 탁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전구가 환하게 켜지듯, 내 복잡했던 머릿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단 한 가지 어떤 생각만이 남게 되었지. ‘음악을 전공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B 대학을 그만두고 세 번째, C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현실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었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망망대해에 뗏목만 타서 던져질 나에게 그야말로 ‘나침반’이 되어 줄, ‘선생님의 존재’였어. 그때 에그버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나는 그를 통해 지금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야. 꽃엔 애정 어린 물과 따스한 햇볕도 필요하지만, 때론 쓰디쓴 비료도 필요하지. 지금의 선생님은 내게 그런 존재야. 선생님 없이는 이 도전도 없었을 거야. 그래서 에그버트에게 감사해. 얼마 전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봤어.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나는 벌써 몇 번이나 봤지.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영화라 자네에게 이 편지에서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오히려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하네만, 혹여나 기억하지 못할까봐 간단히 이야기하겠네. 매트릭스는 ‘지배’야.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들은 인간들을 효과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 가두었지. 인간들은 일생을 그곳에 갇혀 기계들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네. 「Matrix」(1999)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인간 저항군 모피어스와 네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야. 나는 매트릭스가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우리 현실에도 매트릭스가 분명히 존재해. 내가 느끼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네의 공허하고 낯선 느낌에 대한 원인이네.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자네의 눈을 가리는 것이야. 속물들이 만들어 낸 허상.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온갖 겉치레들.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 없이 그저 ‘갓생, 갓생’만을 공허하게 외치도록 만드는 허상이네. 그것은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니야. 나도 그들 중 하나였고 자네 역시 그래. 하지만 이젠 내겐 그런 이유로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로 보여. 허례허식, SNS, 껍데기, 편견, 야유, 냉소, 속물들. 이런 것들이 자네 속의 깊은 욕망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있어. 용기.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야. 나 역시 두렵네. 하지만 진정한 용기란 그 두려움에 대한 강렬한 저항이네. 자네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자네가 침대에 누워 마지막 숨이 다 하는 날 자네를 찾아올 후회는 지금의 두려움을 초월하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시간 따위 없어. 그런 것들이 한 번뿐인 기회를 방해하게 둘 순 없네. 그러니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네오 (”Wake up, Neo.”) 2023년 6월 29일, 자네의 소중한 친구, 백(Baek) 친애하는 나의 친구, 상명대학교 학우들에게. 안녕하세요. 글 쓴 학생입니다. 이 글을 보신 많은 분들이 다음의 두 가지를 궁금해 하실 것이라고 예상하고, 또 실제로 궁금해 하십니다. 1.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의 이야기인가? 궁금해 하시는 것은 이해하나 제 글을 잘 이해하신 분이라면,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면,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것에 더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밝히자면, 유일한 픽션은 조지와 관련된 점입니다. 조지가 폴란드로 떠난 지 7개월이 지났다는 것은 픽션입니다. 조지는 폴란드로 떠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일자리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미 귀국해 있습니다. ^^ 2. ‘백’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도전 ‘백’의 도전은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1lkmRBXGmrXqafPUkkLqCg ‘백’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서는 위의 링크에서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만 갑자기 링크를 첨부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 글을 쓴 이유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통의 한 사람이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기 위함입니다. 글의 내용에 공감이 되셨거나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한 번쯤 방문해보세요. 글의 맨 앞에 함께 첨부한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입니다. 제가 바라는 ‘백’의 결말은 이 곡의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끝까지 들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 그럼 학우 여러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 각자의 길에서 파이팅입니다. 아자아자! 2023년 7월 21일, 여러분의 친구, ‘한’(Han) 올림. 참고 문헌 Billy Joel - Piano Man 「Matrix」(1999) 「Good Will Hunting」(1997) 문의 사항은 아래 메일 주소로 연락주십시오. ryanhan9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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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 최치원 씨를 만나다
편집장 이소명 202210058@sangmyung.kr 상명대학교 컴퓨터과학과 15학번 최치원을 아는가? 모르겠다면, 작년 2022년 말부터 올해 2023년 초까지 에브리타임에서 상명대학교의 ‘흡연’에 대해 언급하던 사람이라면 생각이 나는가? 그래도 모르겠다면, 본 글이 최치원과 상명대학교의 흡연에 관해 설명해 줄 것이다. 상명대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흡연 구역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애쓰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래서 작년 9월 ‘상명대의 흡연 문화, 그 타협점을 찾아’라는 제목으로 흡연 관련 설문조사와 방안들을 담은 웹진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눈에 띄게 변화된 건 없었다. 아직도 흡연 구역을 준수하지 않는 흡연자들은 많았고, 이에 비난하는 에브리타임 글 또한 멈추지 않았다. 비좁은 흡연 부스를 가득 메운 흡연 구역 준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최치원’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 상명대학교 흡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컴퓨터과학과 15학번에 재학 중인 최치원입니다. 미디어소프트웨어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저학년 때는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지 못해 학사경고를 몇 번 받기도 했어요. 광고회사에서도 잠깐 일을 하다 학교로 돌아와 보니 컴퓨터과학과로 명칭이 바뀌었더라고요. 암튼 상명대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최치원입니다. Q : 최치원 님을 잘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A : 작년(2022년) 말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담배 냄새를 맡게 되었어요. 지금의 스뮤 스퀘어 입구 쪽에서 누군가 흡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흡연자이지만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판단되어 그 분한테 공손하게 “죄송하지만, 여기서 담배 태우시면 안 돼요.” 이런 어조로 말을 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떨이를 가리키곤 아무 말 없이 그냥 계속 담배를 태우시더라고요. 재떨이가 있으니, 담배를 태워도 된다. 뭐 이런 의미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거긴 금연 구역이 맞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정류장 앞에서 삼성갤럭시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로 그 사람이 들어가길래 그쪽 직원인 줄 오해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아 에브리타임에 올렸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쪽 직원분이 아니었죠. 그래서 직접 찾아 뵙고 사과한 뒤 에브리타임에도 오해가 있었다는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제가 오해를 한 건 사실이지만, 학교 내 ‘흡연 에티켓’에 대해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을 해왔었기에 이 일을 계기로 학교 측에 전화도 해보고, 에브리타임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이런 활동을 짧게 했었습니다. Q : 에브리타임이 아무래도 다수가 보는 게시판이다 보니, 실명을 공개하며 공격적인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할 수 있던 이유가 있을까요? A : 말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였죠. 에브리타임 자체가 익명 게시판이다 보니깐 마음만 먹으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리고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나서는 건 많은 고민이 필요하죠. 그래서 총대 메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한 명이 나서다 보면 다수가 나설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거든요. Q : 그렇다면 최치원 님이 말씀하신 기대에 대해선 충족하셨나요? A : ‘예’, ‘아니오’ 중에 택하라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제가 올린 가장 마지막 게시물이 굉장히 공격적인 어투였거든요. 졸업을 앞둔 상태라 바쁘지만, 관련 활동을 지속해 왔어요. 원래는 설문조사도 기획했지만, 이래저래 바빠서 그건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저처럼 많은 분이 각자 바쁠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저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익명 게시판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모습을 조금씩 바랄 뿐이었는데 그 작은 변화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그런 실망감에 마지막 게시물을 작성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저에게 피드백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런 분들한테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나 싶으면서도, 매우 감사했죠. Q : 학교 측과 여러 차례 소통하신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얻은 답변이나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A : 느낀 점부터 말하자면 발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몸소 느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질문을 하거나, 요구하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죠. 그래서 다수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복지팀과 시설관리팀에 흡연 부스 개선을 요구한 적이 있어요. 흡연 부스의 시설이 개선되면 흡연구역 준수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미 흡연 관련 민원이 너무 많아서 흡연 부스를 늘리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흡연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니,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건강복지팀에 문의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상담과 관련된 사항만 진행하여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답변을 전해 들었습니다. Q : 가장 최근 게시 글은 꽤 공격적인 말투로, 더 이상 관련 활동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었어요. 활동을 포기하게 된 이유와 그 글을 작성할 때 심정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A : 많이 흥분한 상태로 글을 작성했던 것 같아요. 46대 총학생회 간담회에 참가해 보니 흡연에 관한 문건은 없더라고요. 흡연으로 불만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적극적으로 건의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순간 화가 난 것 같아요. 그리고 흡연으로 인한 민원이 너무 많아 시설 개선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 역시도 아주 답답했죠. 결국엔 제가 혼자 하는 활동은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제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흡연구역을 지키지 않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거든요. Q : 마지막으로, 최치원이 바라는 상명대학교의 흡연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A : 우선 흡연자가 기본적으로 흡연구역을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바닥에 침을 뱉거나 꽁초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고요.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비흡연자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조금씩 내줬으면 해요. 꼭 흡연 문제가 아니더라도, 상명대학교 학생으로서 누리고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줬으면 해요. 각자가 누릴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으니깐요. 그리고 학교 측이나 학생회 같은 자치 기구 쪽에는 건드리기 어렵고 예민한 문제인 걸 알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진행해 줬으면 해요. 제가 실패한 것들 있잖아요. 최치원은 상명대학교의 수많은 학생 중 1명에 불과하다. 최치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돌아온 답변 중 “결국, 저는 실패하고 포기한 사람입니다. 저는 상명대학교 흡연문제에 관련하여 적극적인 행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진행하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 0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학교 내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고 있지 않은 그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를 기획한 건 개인의 실패 이야기를 접한 상명인 독자들이 ‘상명대학교의 흡연’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흡연 문제는 언제나 흡연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흡연자로 인해 시작된다는 걸 최치원도, 필자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상명인 모두도 알고 있다. 그래서 최치원이 말하는 ‘비흡연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흡연자는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건 우리가 우리 모두를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하자는 것 아닐까? 이건 개개인의 판단에 따른 문제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논제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본 기사에도 그런 논제들이 꽤 많이 담겼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켰으면 한다. 인터뷰 중 흡연하며 재떨이 밖에 버려진 꽁초들을 발로 재떨이 쪽으로 밀어 모아주기만 해도 옆에 있던 흡연자들이 재떨이에 꽁초를 버려준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 모두를 위한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다시금 기대해 본다. 어쩌면 최치원은 실패하고, 포기한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 에브리타임 게시글 ] [ 참고 자료 ] 1. 상명대학교『자하교지』웹진3호<상명대의 흡연 문화, 그 타협접을 찾아>, 이소명, 2022.09.08., <https://www.smu.ac.kr/sm-news/special.do?mode=view&articleNo=730443&article.offset=10&articleLimit=10#/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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