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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7 호 [기자석] 무의식의 흐름

  • 작성일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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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28
김상범

[기자석] 무의식의 흐름


곽민진 기자  날씨가 부쩍 추워진 요즘 같은 날에는 괜히 글자 하나를 끄적이다 지우고 다시 펜을 허공에 배회하기를 반복하는 감상에 빠지곤 한다. 바깥에 매서운 바람이 흩날릴 때, 건조하지만 후끈한 히터 공기로 덥혀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어여쁜 낙엽이 하나씩 사그라들 때쯤, 서서히 날씨가 매서워지기 시작한다. 동물들이 겨울잠에 들 준비를 하듯, 우리들 역시 서서히 일 년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학기의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다. 그것이 굳이 시험과 과제들이 몰아닥쳐 들어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연말, 한 해의 마무리, 한 학기의 마무리, 무언가의 종말을 뜻하는 시점은 언제나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어렸을 적 그 언젠가, 이젠 희미할 정도의 까마득한 어느 낙천적인 이는 새로운 한 해를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주진 못할 것이다. 그때는 한 해를 넘기는 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듯, 설렜었나. 그때는 한 살을 더 먹어가는 자신이 다 큰 것 같고, 그것이 자랑스러웠었나. 웃기는 일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동일하게 시간은 흘러가는데 왜 그때는 어른이 되는 것을 뭐 그리 바랐는지.


  그때의 내가 ‘어른’으로 정의할 즈음의 나이가 되어서 회상하는 어느 날. 어른들이 하시는 고루한 말씀들에 공감할 즈음, 문득 내가 나도 모를 어딘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은 너무나 아득하고 희미해서 이젠 내가 그리워하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의 당신이 그리운 건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도 완벽하게 아스라하다.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내 망각의 안배일까.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라는 망각의 어느 희미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축복마저도 걷어가지 못한 잔해들을 애써 부여잡는다. 그 잔해들을 가득 끌어모은 채 초라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당신의 미지근한 손의 온도와 나를 잔잔히 이끌던 눈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인생의 첫 종말이자, 유년 시절의 종지부를 찍어낸 당신께 나는 여전히 하루의 독백을 뱉어낸다.


  20대의 어느 초입에서,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청춘이라고 일컫는 하루가 어깨를 짓누를 때 나는 여전히 중얼거린다.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나아가라며 격려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저 버텨내기에, 제자리걸음의 치열함을 공감한다.


  하루의 무게를 모르던 어느 날의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기는 한참 멀었다. 그때의 나에게 반짝거리던 그 여유로움은 몇 겹의 시간을 둘러싸 포장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는 수많은 독백에 답하면서 간혹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곽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