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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04 호 [사설]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 작성일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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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57
김지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학우 여러분, 우리 상명대학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우리 대학에 입학하셨다는 것은 많은 경쟁을 뚫고 우리 대학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획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을 지닌 사람 중에서도 공원 곳곳의 시설을 왕성히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대학의 모든 시설과 교직원들은 모두 여러분들을 위해서 있는 것들이니 아무쪼록 대학 생활을 하시는 동안 우리 대학이 제공하는 모든 것들을 활발히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도서관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요즘은 도서관이라는 말 대신 학술정보관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이는 오늘날 도서관의 역할이 단순히 책을 읽거나 빌리는 것 외에 각종 영상 및 음원, 데이터 등 온갖 종류의 정보를 얻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의 학술정보관도 이러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꾸준히 투자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날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읽다 보면 왠지 억울한 생각도 들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지요.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게 이 시간만큼 생산적인 시간은 또 없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보낸 그 시간 덕분에 직장도 얻었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가족들도 잘 부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저뿐만이겠습니까. 오징어게임의 미술감독 채경선 동문(99학번)은 대학생 시절 시간 나는 대로 도서관을 찾았는데 여기서 보낸 시간이 지금 자신의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것이 이렇게 생산적인 이유는 이것이 엄청난 착취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한푼 두푼 돈을 모으는 사람이 이렇게 모아둔 돈을 한꺼번에 가져가는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평생 노력해서 축적해 놓은 지식과 경험의 알짜들을 반나절만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지식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선한 일이고 권장되는 일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본인의 지식과 경험이 오롯이 착취당하기를 소망하면서 정성을 다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한 달에 적어도 두 권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달에 두 권이 많아 보여도 대학생활 4년 동안 채 100권이 안 됩니다. 매년 수십 만권의 책이 나오는 세상에서 100권은 작은 수입니다. “아 나는 다시 그 시절, 이 책을 들고 어서 빨리 읽고 싶어서 내 방으로 뛰어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한없이 부러워한다. 지금 막 이 책을 펼치려 하는 낯모를 어느 젊은이를 축하의 마음을 담아 부러워한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분명 그 친구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섬이라는 제목의 책에 관해 쓴 서평입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어찌 카뮈뿐이겠습니까. 저도 대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수억 원이 아깝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모두가 부러워하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시절을 보내고 계십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은 많이 아프신가요. 그럼 위로가 될만한 두 청년을 소개합니다. 조영래 변호사가 엮은 전태일 평전을 보면 청년 전태일이 얼마나 대학생이 되고 싶어 했는지 느껴집니다. 그는 대학생 친구라도 하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일기에 적고 있습니다. 오청성(당시 23세)은 판문점에서 운전병으로 일하다가 수백 미터를 달려서 남한으로 귀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5발의 총알을 맞고 의식을 잃었으나 이국종 교수의 수술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깨어난 후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자기도 남한의 젊은이들처럼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러시아 속담에 누군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신은 그에게 스승을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이 귀한 시간을 행복하고 보람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도서관 2층 관장실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저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 언제든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