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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4 호 [기자석] 나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 작성일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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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119
김수인

나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나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외적으로 어려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어려지고 있다. 엄마는 내게 “너는 무슨 나이를 거꾸로 먹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크게 티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 나를 보았을 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어렸을 때 또래 아이들이 온갖 장신구에, 귀여운 헤어스타일에,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으려 하고 있을 때 나는 그런 것들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공주 인형을 가지고 놀 때, 나는 오히려 티비를 보며 춤을 추고 예능을 봤다. 엄마가 머리에 망을 씌우려고 하니 화를 내고서 결국은 양갈래로 묶기만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귀여운 인형을 보면 마구 사고 싶고, 캐릭터 상품들을 보면 그대로 앞에 멈춰서버린다. 단순히 내가 어린이들처럼 장난감이 너무 귀여워보이고 갖고싶어서 그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내면의 내가 너무 지쳐있어서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는 것 같다. 나는 요즘 갈수록 모든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내면이 어려지고 있는 건 정말 확실한 것 같다.


흔히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물론 아직 21세에 불과하지만, 맞다. 나는 내면이 ‘어른이’다. 하지만 결코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또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을 보장해준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야간근무나 주말근무를 시키는 곳은 많고, 이로 인한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은 편이다. 요즘 시대에 평범한 시민인 우리는 ‘휴식’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닌 그런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휴식시간에도 남은 업무가 있거나, 아직 해야 할 업무가 많다면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늘어지기 마련이다. 즉,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내면에 이런 부분들이 조금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피로나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다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무기력증, 혹은 그 외의 다른 증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내면뿐만 아니라 외적 부분인 우리 몸에도 피해를 준다. 과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이다. 


나도 그랬다. 각박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나도 물론 ‘어른의 시간’을 짧게 경험했지만, 많이 방황했다. 늘 내가 아는 반경 내에서만 생활을 하던 중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생이 되어서는 내가 온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던져져야만 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매일같이 봐도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대학생은 그것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 인간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하나 이상의 전공과목을 깨우쳐야만 했다. 그마저도 어느 도움도 없이, 학창 시절에는 흔하디 흔하던 그 방과후 수업도 하나도 없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꽤 자주 힘들어했던 것 같다. 세상은 이런 현상을 ‘현타(현실자각 타임)’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 현타가 유난히도 크게 느껴졌다.


내가 그런 시간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내가 내면을 ‘어른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게끔 자극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언니들은 나보다 4~5살 정도 많은데, 한 캐릭터나 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분야에 빠져서 산다. 쉬는 날이면 새로 나온 제품들을 구경하러 나가고, 매번 제품을 구매해 돌아온다. 언니들의 가방에는 늘 그런 물건들이 넘쳐난다. 나는 그런 언니들을 보며 작년까지만 해도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어린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반대 입장도 되어보아야 한다. 늘 주변에서 그런 제품들을 사고 쓰면서 좋아하던 언니들의 모습을 자주 보던 것이 나도 모르게 생각났고, 그걸 보고 자란 나도 어느 순간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선 느꼈다. 내 안에서 엄청나게 행복한 감정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이렇게 ‘어른이’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내면이 ‘어른이’가 된 순간부터, 나는 내면이 행복한 ‘어른’이 된 것이다. 힘들던 순간들을 극복한 나처럼, 많은 어른들이 스스로 내면에 행복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김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