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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4 호 [편집장의 시선]무지에 대한 무관심

  • 작성일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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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239
이해람

“저는 불의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해가 되어 나에게 다가오더라도 저는 이 세상을 결코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막심고리끼 「어머니」 중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에서 러시아 혁명에 참여한 노동자인 파벨 블라소프가 그의 어머니 펠라게바 닐로프냐에게 한 말이다.


파벨 블라소프는 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주정뱅이였고 펠라게바 닐로프냐는 글씨도 읽지 못하는, 권력의 변두리에 위치한 여성 노동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무지에 맞섰고 마침내 혁명가로 거듭나게 된다.


나는 항상 나의 무지를 두려워한다.


사람으로서의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기자로서 펜을 쥔 내가 누군가를 인격 살인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의도가 전혀 없었던 말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살점 깊은 곳까지 도려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짊어지고 있다.


동시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사회에 대해 무지했을 때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특정 중요 사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대우받든, 기계적 부속품으로 인지되든 상관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앎’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은 스스로 죽음에 다가서는 것이자 사회 기득권이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축적할 수 있게 해주며, 비로소 공동체를 병들게 만든다.그런가하면 자신의 무지에 대해 관심을 지니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몰라서 그랬다”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핑계는 없다.


우리 대학 안에서 유의미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학내 사안, 정치사회적 이슈 등에 대한 무지와, 이 무지에 대한 무관심이 오히려 여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에 심각한 병폐로 학생사회에 악순환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무관심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총학생회 역시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며, 그 의지 또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총학생회가 캠퍼스의 중심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진보를 위한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학교도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캠퍼스의 경사만큼이나 기울어진 대학 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학생 자치의 붕괴가 발생하고 있다. 학교와 학생 사이의 정보 격차 등으로 생기는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시혜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 무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스스로를 절벽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무지에 대한 무관심은 대다수의 학생들에서 학생자치로 이어지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한 의제 또한 확장성은 물론 진중함까지 떨어지는 온라인상에서 기껏해야 하루 이틀 이어지는 실정이며, 학생총회 등 공개적인 토론장에서 함께 연대하여 고민하고자 하는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학내에서 어떠한 의제도 전해질을 따라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내언론이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진다.


모든 사람이 지식에 통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생에게 주어진 분명한 사명은 무지에 맞서는 것이다.


파벨 블라소프와 펠라게바 닐로프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무지함을 알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질문하는 자세,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하다.무지에 맞서자. 그것이 배움이고, 그래야만 학생이다. 그리고 그 저항이 행해지는 장소가 대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