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5 호 [교수사설] 경험하는 인간
경험은 인류가 세상을 만나고 익히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전통적인 경험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육체와 감각으로 직접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특정 유형의 경험들이 사라지고 있다. 여러 매개 기술을 통해 물리적 공간에 근거한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도 가속화되어 간다. 물질세계에 덜 얽매인 방식으로 개인적이고 즉각적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여러 기술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이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누구는 이를 “경험의 멸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을 직접 경험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쓴다. 소설 한 편 영화 한 편을 온전히 경험하기보다 유튜브에 떠도는 줄거리 요약을 보고는 작품을 다 읽은 것처럼 착각한다. 게임 영상, 여행 영상, 먹방 영상, 언박싱 영상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메타버스 등의 용어가 대중화된 지도 오래되었다. 현대인은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두 세계 모두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굳이 귀찮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방 안에 누워 실제 경험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개인이 아닌 소비자로 살아간다.
최근 AI는 사고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과학 기술이 대체할 수 있음을 놀라운 능력으로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을 올려놓으면 그림으로 변환해 주고, 자료를 입력하면 PPT를 만들어 주며, 감정을 표현해달라고 하면 한 편의 시를 뚝딱 창작해 낸다. 소설이나 영화 줄거리, 논문을 요구하면 몇 초 내에 결과를 찾아주고, 보고서 작성 심부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수행한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다. 결과를 효과적으로 도출하기 위한 사고의 메커니즘을 이성이라고 한다면 AI는 매우 합리적으로 인간의 일을 처리해 주는 새로운 이성이다. 이런 과학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과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서는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실험실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과학자라고 해도 언덕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고, 운동장에서 땀 흘려 농구공을 던지고, 문학 고전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경험에서 만족을 느낀다. 또,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경험을 통해 성숙한 자아를 완성해 간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기를 찾고, 누군가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해 줄 때 존재의 의미를 확인한다. 직접 경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심리적·정신적으로 취약해지기 쉽다는 점은 경험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
효과 면에서는 같을지 모르나 실내에서 기계 위를 달리는 일과 날씨 좋은 공원의 트랙을 달리는 일이 경험 면에서 같을 수 없다. 영상으로 보는 가을 풍경은 실제 오감으로 느끼는 가을 산의 정경과 다르다. 요약으로 소설 돈키호테를 읽은 사람과 밑줄을 그어가며 두꺼운 고전의 맛을 경험한 사람의 독서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글쓰기라고는 온라인에 댓글 달아본 게 전부인 사람과 긴 고민 끝에 짧은 글이라도 완성해 본 사람의 경험은 깊이가 다르다. 경험은 과정이고 그 과정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봉사활동이나 배낭여행,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과정의 소중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조차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는 공동 경험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특별한 목적도 없이 만나서 가벼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그 과정이 좋아서이다. 이런 편안한 인간관계가 없으면 우리의 내면은 황폐해진다. 인생에는 혼자서 감당하기보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저절로 풀리는 문제가 많다. 해결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혼자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개인은 고립된 개인보다 더 현명해진다. 인간관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도 알아간다.
경험이 쌓여 지식이 되고 기억이 되고 지혜가 된다. 누군가의 현재를 알고 싶으면 과거를 보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소망이나 결심이 아니라 그가 쌓은 경험이다. 경험이 멸종되면 타고난 인간의 감각들도 퇴화할지 모른다.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고 느끼는 감각의 즐거움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경험이 사라지면 한여름 매미 소리의 권태와 한겨울 설원의 적막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가을 햇빛의 청량함과 봄날 햇살의 간지러움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류가 다수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 미래는 좀비의 창궐만큼이나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