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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53 호 [교수칼럼] 책을 나누며 더 넓은 세상을 만나보자

  • 작성일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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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3461
이은민

  수업이 끝난 후 가끔 책을 꺼내 잠깐 읽는 학생이 있었다. 에세이, 소설, 시집까지 매번 다양한 장르의 책을 꺼내서 읽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운 청춘의 그림처럼 보였다. 이 학생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책 읽기가 늘 &해야 하지만 잘 안 되는 일&로 남기 때문이도 하다. 수업 전후, 컴퍼스 곳곳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시간은 핸드폰 화면 속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전공책만 읽어도 벅찬데, 따로 시간을 내 소설이나 에세이를 펼치는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도서관은 가본지 오래고, 새로 산 책은 책장 한편에 예쁜 인테리어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책 읽기가 삶의 작은 공백을 채워주는 순간이 있다. 책은 혼자 읽어도 즐거운 일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와 경험이 더해진다. 같은 문장을 읽었는데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예상치 못한 감정을 발견할 때, 우리는 책을 넘어 서로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북클럽'이다.


  이 북클럽의 세계를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에서도 조금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 〈제인오스틴 북클럽〉 주인공들이 오스틴의 소설을 함께 읽으며 각자의 사랑과 고민을 돌아보며, 책을 통해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영화 〈북클럽〉에서는 40년간 북클럽을 이어오던 오랜 친구들의 새로운 시작을 보여준다. 전쟁 중에 작은 섬에서 생겨난 독서모임을 그린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원래 몰래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시작된 모임이었는데 독일군에게 들키자 문학모임인 척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 이야기다. 책이 사람들을 묶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보여준다. 


  북클럽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꼭 거창한 치유의 장일 아니어도 괜찮고, 40년이나 이어 나가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책을 함께 읽는 일은 혼자일 때와는 또다른 울림을 만들곤 한다. 


  물론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현실은 무시할 수 없다. 2025년 대학생들은 얼마나 바쁜가? 하지만 북클럽은 오히려 바쁜 사람들에게 더 어울린다. 혼자 읽으려 하면 끝까지 못 읽는 책도, 다른 이와 함께라면 가볍게라도 이어가게 된다. 꼭 한 달에 한 권을 읽을 필요도 없다. 친구들과 시험 끝난 뒤 모여서 짧은 글 한 편만 같이 읽어도 좋다. 또는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고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카페에 모여 30분은 책을 읽고 30분은 수다를 떠는 식이라면, 부담도 없고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행위 자체보다, 그것을 매개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다. 꼭 진지하게 책만 읽는 모임이 아니라, 친구들과 친목을 나누거나 소소한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책도 곁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대학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늘 쏟아지는 과제와 기회 속에서 책 한 권조차 여유롭게 읽기 힘들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북클럽을 시작하기 좋은 때다. 책은 시험처럼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시선을 빌려 새로운 생각을 열어줄 뿐이다. 작은 모임에서 함께 책을 펼치다 보면, 잠시 잊고 지내던 여유와 활력이 돌아올 것이다. 바쁜 하루 속, 친구들과 책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더 넓은 세상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하경영(영어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