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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35 호 [책으로 세상 읽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작성일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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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98
정소영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아마추어 수영 대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하면서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지

(출처: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239082)


  주로 에세이 책에는 이렇게 잘 사는 나, 이렇게 멋진 나, 이렇게 똑똑한 나 등 자신을 뽐내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에세이 책 자체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는 나 자신에 취해있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역시 달리는 나 자신에 취해있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달리는 이야기에 대한 책이지 건강법에 대한 책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자, 모두 함께 매일 달리기를 해서 건강해집시다”와 같은 주장을 떠벌리고 싶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계속 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하고 생각하거나 자문자답하고 있을 뿐이다. 

- 서론 중 


  그러나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달리고 있는 자신을 뽐내며 독자를 붙잡고 한 번 달려보는 건 어떠냐는 식의 내용이 아니라, 달리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업 작가로 일하게 되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가 어느새 마라토너에 도전하고, 점차 나이 들어가면서 젊었을 때의 마라톤 기록을 깨기 어려워지자,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지만 시간이 흐르며 달리기 자체에 몰입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며, 나도 저렇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 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본론 중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재작년에 매일 1시간씩 걸었던 게 생각났다. 화가 나고 슬플 때마다 걸으면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던 거 같아서 공감됐다. 국가대표와 같은 프로 운동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대회를 목표로 운동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주 종목을 마라톤에서 철인 3종으로 바꾸게 되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수영 연습을 해나가는 무라카미 모습을 보며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생각 중, 책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아마추어 수영선수 대회를 나가고 싶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나에게 달리기와 같은 존재인 수영이 생각났고, 다시 수영을 시작해서 최종적으로는 아마추어 수영 대회에 나가고 싶어졌다. 운동을 배워본 적은 있어도 대회를 준비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고, 중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그만둔 이후로는 꾸준히 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우고 다 까먹어서, 지금은 한 팔 접영까지밖에 못하는 상태지만, 그럼에도 무작정 아마추어 수영 대회를 목표로 수영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담긴 어떠한 에너지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내가 정말로 아마추어 수영 대회에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 싶고, 다시 시작할 것이고, 그 목표는 아마추어 수영 대회란 것만은 확실하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지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