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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35 호 [교수칼럼] 자화상을 '쓰는' 자기성찰의 시간

  • 작성일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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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05
정소영

자화상을 쓰는’ 자기성찰의 시간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볼 때가 있다. 가장 친숙하고도 어딘지 낯선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자아성찰(自我省察)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반성하고 살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거울 속의 모습이 사실 뒤집힌 상(象)이듯, 자신을 온전히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에 세 번씩 스스로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삼성오신(三省吾身)’의 고사가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자신을 대면하는 일은 힘들고 두렵기 마련이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지금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서 있는지, 나의 진실한 마음과 소망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유효한 방식이 ‘자화상 시 쓰기’다. 

  17~18세기 서구에서 근대의 도래와 함께 본격적 자화상이 대두되었는데, 자화상은 근대적 주체를 찾고 표현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였다. 본래 회화의 양식이나, 18세기 이후 문자를 활용한 하나의 글쓰기 형태로서 자기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우리 문학에서도 식민지기에 많은 자화상 시편들이 나타난다. 거울 등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근대인의 ‘자화상적 응시’가 나타나 있는 시들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이들에게 근대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1930년대 이후 나타난 일련의 자화상 시편들 중 서정주, 윤동주, 노천명, 이상의 <자화상> 시편을 읽어보면 새로운 근대적 주체로서 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특히 윤동주의 자화상 시편이 주목되는데, 그 시편들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과 자기수양, 좀 더 고양된 자신을 지향하는 승화와 초월의 상승 의지가 우물을 들여다보거나 하늘과 별을 우러러보고, 거울을 닦는 등의 자기 성찰의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물론 화가처럼 스스로를 그려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듯 자화상 시를 써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고,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하며 다른 것에 비유하는 문장을 여러 개 만들어 이것을 재료로 해서 시를 써보자. 그리고 자기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나 주변의 인물, 사물들로까지 서서히 시선을 넓혀보는 것이다. 

  시는 잘 짜인 기승전결의 내러티브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흩어진 기억과 감정, 스스로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의 속마음을 담아내기 좋다. 정순진(2014)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존재 의의를 발견하고자 할 때 시를 쓰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은유는 인간과 세계 간의 상호작용, 관계를 이해하고 감정이입 하는 데서 생겨나므로 은유를 사용하면 숨겨진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화상 시 쓰기’를 통해 자기 표현력도 기르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높일 수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도 괜찮다. 문학적으로 완성된, 잘 쓴 시일 필요도 없다. 

  사실 우리나라 입시 현실에서 대학생들은 경쟁적 풍토와 과열된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대학에 오게 되곤 한다. 그러니 대학시절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을 찾는 일은 자기 외에 누구도 할 수 없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곧 방학이 시작될 텐데, 이번 방학에는 오랜만에 고요히 앉아 자기 자신과 나누는 나직한 대화처럼, 자화상 시 한 편 써보는 것은 어떨까. 잊고 있었거나, 자기도 모르던 자신의 부서진 조각이 발견되어, 스스로를 새롭게 다시 만들어갈 작은 시작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