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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19 호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들을 이야기하다

  • 작성일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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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369
장원준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들을 이야기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 유물은 모두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예술품이자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원래 만들어졌던 곳이 아닌 먼 타국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전통과 과거를 대표하는 수많은 문화재가 아직도 해외에 존재하고 있다. 문화재의 소유권에 대한 견해 차이와 함께 국가 간 외교적 이해관계까지 얽혀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의 문화재 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현재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화재가 반환받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재의 소유권에 대해서 이를 문화재가 만들어진 해당 나라의 소유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제적 유산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문화 민족주의’라고 하며, 후자는 ‘문화 국제주의’라고 한다. ‘문화 민족주의’는 문화재를 해당 국가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보고 문화재는 반드시 원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론으로 고대 미술을 서구 역사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식민지론과 다르지 않다는 견해를 보인다. ‘문화 국제주의’는 문화재가 특정 국가나 민족에 속하지 않고, 인류 역사 속 결과물이기 때문에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존이나 감상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다. 다른 이유로는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증명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약탈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인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가져간 것인지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반환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는 몽유도원도로 볼 수 있다.


약탈이라는 정확한 증거가 없어 반환이 어려운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는 나지막한 산세가 이어지더니 돌연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암절벽이 등장하는 것으로, 험준한 바위와 계곡은 비스듬한 복숭아밭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언덕에는 복사꽃이 만발했고 디풀로 엮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두 줄기로 쏟아지는 환상적인 폭포수와 함께, 물가에 출렁이는 빈 배도 보이는데 현실경과 이상경이 공존하는 꿈속의 낙원. 안견이 1447년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의 명을 받고 그린 걸작이다.


▲몽유도원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3528&cid=58863&categoryId=58863)


현재 일본의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고 임진왜란 당시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불법 반출, 약탈이라는 정확한 증거 없어 반환 요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돌려받을 방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2009년 일본의 허가로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 차례의 전시가 열리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더 이상 전시회가 열리지 않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현 상황이다.


현재 해외에 있는 문화재는 21개 국가 582개 소장처에 총 19만 3,136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파악 가능한 전 세계의 주요 박물관 및 미술관 등 기관 중심의 통계자료에 불가하다. 해외에 존재하는 문화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직지심체요절’이다.


▲ 직지심체요절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31216&cid=42955&categoryId=42955)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승려 경한(景閑)이 선(禪)의 요체(要諦)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으로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정식 서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고, 간략하게 『직지심체요절』이라고 한다. 내용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의 사전(史傳) 관계 문헌을 섭렵하여 역대의 여러 부처를 비롯한 조사와 고승들의 게(偈)·송(頌)·찬(讚)·명(銘)·서(書)·시(詩)·법어(法語)·설법(說法) 등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긴요한 것을 초록하여 편찬한 것이다.


현재 직지심체요절은 1897년에서 1910년 사이 프랑스 공사가 정식으로 구매해서 가져갔고 이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단독 금고에 보관 중이다. 도난, 약탈 문화재의 경우는 반출 경위가 확인되면 돌려주는 것이 국제법상 관례이지만 직지심체요절의 경우 거래를 통해 해외로 팔려나간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직지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렇듯 도난과 약탈이 아닌 거래를 통해 팔려나간 문화재들은 반환 요구를 할 수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다. 


모든 문화재가 반환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문화재가 반환되지 못하고 대여의 형식으로 우리 곁에 온 것은 아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문화재가 반환된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외규장각 의궤”이다. 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를 열라'고 지시한 왕의 전교부터, 행사를 위해 관청 사이 오간 문서와 왕과 신하들이 논의한 기록까지, 모든 기록을 총망라한 '백서' 같은 책이다. 행사마다 문서의 양과 종류가 달라, 책마다 크기와 두께도 다르다. 조선 초기의 의궤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조선 중기 이후의 의궤만 남아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군이 약탈해 갔다. 통상 3~9부 펴낸 의궤 중 왕이 보기 위해 만든 단 한 권 어람용 의궤를 왕실의 보물창고 격이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했는데 고스란히 빼앗긴 셈이다. 이후 반환을 위해 수많은 협의가 있었고 여러 고난이 존재했지만,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의 정체성에 속하며 이는 보편적 세계 문화재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화재는 세계인의 유산이라는 문화 국제주의적 입장에 전면 반박함으로써 해결에 진전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2011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왔다. 이후 이러한 해결 사례 이후 인천광역시가 소유했던 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방호 순양함의 군기를 4년간 대여(2년 기본 + 2년 연장)했다가 러시아가 2014년 11월에 반환받은 사례가 생겨나기도 했다.


▲항공기를 통해 한국으로 반환되는 외규장각 의궤 (출처 :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414800076)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노력


 문화재 반환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과 개인의 노력으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다국적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재청과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원’ 등의 협약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을 지속해 왔다. 효명세자 빈 책봉 죽책 등 해외 소재 문화재 반환 등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지속하고 있고, 2020년도 당시 국내 의류 브랜드 탑텐에서는 문화재 환수 캠페인 '컴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직지심체요절과 몽유도원도, 이천향교 5층 석탑에 대한 아트 그래픽을 새긴 티셔츠를 출시해 반출 문화재 현황을 소비자들에게 알림으로써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례처럼 기업에서도 큰 노력을 하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화재 반환, 우리의 지속되는 관심이 필요


 이처럼 우리 문화재임에도 반환받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전시조차 열기 어렵다는 사실은 힘든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재 반환에 대해 무관심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환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 우리 역사를 포기한다고 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를 반환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나라와 나라 간에 얽힌 법, 정치, 외교적 문제에 해당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노력한다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장원준 기자, 이은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