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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62 호 수어가 연결하는 세상, 소통의 현주소

  • 작성일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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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411
김지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본다. 점자블록이나 저상버스처럼 눈에 보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장벽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통의 장벽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말 한마디, 안내방송 한 줄, 짧은 설명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닿지 않는 정보가 된다.


  특히 소통의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정보 접근과 사회 참여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수어 통역과 배리어프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수어는 낯선 언어로 남아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수어가 지닌 의미와 이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를 다시 살펴볼 시점이다.


수어에 대한 이해와 오해


  수어는 소리로 말을 배우기 어려운 농인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독립된 어휘와 문법 체계를 갖추었으며, 손과 손가락의 모양(수형)/손바닥의 방향(수향)/손의 위치(수위)/손의 움직임(수동) 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한국수어는 ‘한국수화언어’를 줄인 말로, 한국어와는 다른 대한민국 농인의 고유한 언어다. 과거에는 ‘수화’라고 불렀지만,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이를 하나의 언어로 본다는 의미를 담아 ‘수화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오늘날에는 ‘수어’ 또는 ‘수화언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때 농인은 청각장애인 전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가운데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청각장애인을 농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언어생활과 정체성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 농문화다.


  수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 공통어라는 인식과는 달리, 나라별로 다르게 발달해 서로 다른 언어로 존재한다. 또한 수어를 익혔다면 한국어로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농인에게 한국어는 또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농인이 상대방의 입 모양만 보고도 이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국어 단어와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농인이 입 모양만으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수어를 하는 모습 (사진: https://www.dongascience.com/ko/news/76278)


수어를 둘러싼 변화


  최근 수어를 둘러싼 제도와 환경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 중 하나는 국회의 수어통역사 직접고용이다. 국회는 2026년 3월, 기존 용역 계약 형태로 운영해 오던 수어통역사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고 신규 수어통역사 8명을 임명했다. 이는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더욱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수어의 사용 환경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한국수어사전’에는 1만 5천 개가 넘는 수어가 등록돼 있으며, 일상생활 수어뿐 아니라 법률·교통·의학 같은 전문 용어와 문화정보 수어까지 포함돼 있다. 여기에 더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외래어와 고유명사도 관련 기관의 연구를 거쳐 계속 보급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질병관리청과 각 지자체의 브리핑 화면 한쪽에 수어통역이 함께 제공되면서 시민들이 수어를 이전보다 자주 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수어를 사용하는 인물이나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수어통역 활동가 양성 교육이나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어 교육 등이 확대되고 있으며, 수어를 사용하는 연예인들 역시 주목받고 있다.


시작된 변화,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충분한 환경 조성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행 제도상 지상파 방송의 수어통역 편성 의무 비율은 전체 방송 시간의 7% 수준에 그친다. 교육 현장에서도 한계는 분명하다. 지난해 전국 청각장애 학생 2,812명 가운데 1,653명, 즉 58.8%가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어통역이나 전문 지원 인력 없이 수업을 듣고 있다. 수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넉넉하지 않다. 최근 5년 사이 청각장애 특수학교는 강원과 전남에서 각각 1곳씩 문을 닫아 전국 12곳만이 남았고, 이 가운데 7곳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국립국어원의 2023년 조사에서도 청각장애인 응답자 500명 중 84.6%가 학교에서 가장 원하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수어를 꼽았지만, 언어 능력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6세 미만 시기에 수어를 배운 비율은 10.2%에 불과했다.


▲ 전국 청각장애 학생 수와 특수학교 수 비교 (사진: https://www.seoul.co.kr/news/society/education-news/2026/02/04/20260204010003?wlog_tag3=naver)


  고용 문제도 비슷하다. 2024년 새로 등록된 장애인 85,947명 가운데 청각장애인은 3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2025년 상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서 청각장애인 고용률은 29.5%에 머물렀다. 이는 시각장애인 42.6%, 지체장애인 42.3%에 비해 확연히 낮은 수치이다. 


  이처럼 수어의 공용어 지위 확보와 접근성 확대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농인들의 삶으로까지 변화가 충분히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적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이행은 여전히 더디다. 진정한 포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의 마련을 넘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가 일상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내미는 손, 수어


  수어는 단순한 몸짓이 아닌 하나의 완전한 언어이며 농문화의 핵심이다. 수어를 배운다는 것은 소통의 도구를 하나 더 익히는 것을 넘어, 농인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는 행동이다. 장애에 대한 이해는 결국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며, 수어는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아래 한글 수어 자음·모음 사진을 참고하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수어로 표현해 볼 수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작은 손짓 하나로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 한글 지문자 (사진: 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569)



김지연 기자, 서성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