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3 호 전통과 변화 사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명절
개천절인 10월 3일부터 주말과 추석 연휴, 한글날을 포함해 10월 12일까지 10일간의 황금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MZ세대는 긴 명절 연휴를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명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의 명절은 어떻게 변화할까?
추석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로 연중 으뜸 명절이다.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등으로도 불리며, 신라시대부터 명절로 자리 잡았다. 추석날 아침에는 조상의 신주나 사진을 모시고 차례를 지낸다. 풋바심(일찍 수확한 곡식으로 밥을 지어 조상께 올리고, 가족이 나누어 먹음), 올게심니(잘 익은 곡식 이삭을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 풍년을 기원함), 반보기와 근친(반나절 동안 만나는 것) 등의 풍습을 행하고 강강술래와 씨름 등의 민속놀이를 했다.
▲ 강강술래와 씨름(사진: https://www.yna.co.kr/view/AKR20240904048500005?input=1195m)
MZ세대의 추석
그러나 지금은 긴 연휴를 맞아, 대명절 추석을 챙기는 대신, 해외여행이나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계청의 ‘내국인 출국-연령별’ 자료를 보면 MZ세대의 여행객 수는 2013년 9월 47만 2,243명에서 지난해 9월 77만 5,956명으로 30만 명 이상 증가했다. 편한 여행을 위해 패키지 상품을 예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은 연차까지 소진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과거에는 가족과의 만남이 명절의 핵심이었지만, 치솟는 물가로 인한 귀향 대신 알바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명절 단기 알바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7~30% 높게 형성되기에, 귀성 대신 알바를 선택하는 것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성인 1,5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1.1%)이 “명절 연휴에 아르바이트할 계획이 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당근알바’의 경우 설 연휴 직전 2주 동안 구인 게시글과 구직 지원자가 전달 같은 기간보다 각각 13.9%, 19.9% 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명절 특수 알바의 종류도 백화점·마트 판매 보조, 물류 분류, 택배·배달 등에서 펫시터, 전 부치기, 맛집 웨이팅 대행 등 소일거리형으로 확장되고 있다.
▲ 추석 연휴 아르바이트 계획 (사진: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4243)
가족과 친척이 모여 결혼·취업 등 민감한 질문이 쏟아지는 명절은 다소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이에 따라 스터디카페, 학원 등을 찾는 ‘명절 대피소’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명절 대피소’란 명절에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하여 쉴 만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알바천국이 성인 1,53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고향 방문을 피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자기 계발에 집중하기 위해서’(24.1%)와 ‘명절 잔소리·스트레스 회피’(22.6%)라고 답변했다. 스터디카페 운영업체 ‘오래’가 지난 3년간 명절 연휴 300만 건의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휴 나흘 동안 약 250만 명이 전국 스터디카페를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20대 이용자 비율이 평소보다 높았고, 명절 마지막 날에는 10대(20%)보다 20대(60%)가 세 배가량 많아 ‘도피 목적’의 이용이 두드러진 것으로 해석된다.
소비의 패턴 변화와 전통 명절 문화의 소규모화
명절 전후로 자취촌과 1인 가구 사이에서 ‘명절 선물 재테크’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먹지 않거나 쓰지 않는 명절 선물을 중고 플랫폼에서 되파는 것으로, 명절 전후로 햄, 참치, 홍삼, 샴푸·린스 등의 흔한 추석 선물 세트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비싼 물가와 더불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짠테크와 같은 소비 성향이 맞물리면서, 명절 선물세트를 활용한 재테크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명절맞이 체리슈머(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MZ 세대는 미코노미(나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성향)가 뚜렷한 만큼 명절 연휴 선물에서도 돈과 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쓰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21년 이베이코리아가 오픈마켓 G마켓과 옥션의 설 선물 판매 데이터 2년 치를 비교·분석한 결과, 2030 세대는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지난해 추석 연휴, 지인에게는 건강식품(18%), 커피·음료(15%), 생필품(14%)을 주로 선물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생활·미용가전(14%), 골프용품(12%), 노트북/PC(9%) 등을 구매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피부관리기(130%), 명품 잡화(85%), 노트북(29%) 등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2030 세대는 노트북과 컴퓨터 구매가 가장 많았다.
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만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설 명절 여가활동 및 가족관계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30 저 연령층은 설 명절을 ‘휴식’의 시간으로 인식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 콘텐츠 몰아보기, 맛있는 음식 등을 즐기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가족이나 친지와 만나더라도 특별히 함께 활동하려는 욕구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다른 명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추석에는 귀성보다 각자의 집에서 OTT를 시청하거나 배달 음식을 이용한다. 또한 강강술래, 씨름, 윷놀이 등 전통 단체 놀이보다는 개인 생활을 즐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명절은 점점 간소화되고 소규모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향후 명절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일까?
새로운 명절의 등장
김미영 박사(한국국학진흥원 민속·사회학)는 “명절이든 제사든 형식보다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조상에 대한 고마움이다. 나를 존재하게 하고, 생명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으면 된다. 제례 역시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옛 풍습 중에 ‘망제’(望祭)라고 있다. 명절이나 기일에 멀리 타향에 있을 때 고향이나 조상의 무덤 쪽을 바라보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연초에 유학자나 선비들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세배를 올리기도 했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에도 비대면 제사와 세배가 행해졌던 것”이라며 “전통을 따져 비대면을 거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우리에게는 세대·가족·지역 공동체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명절 문화 필요하다. 첫 번째로, 명절에 자녀, 손주, 친척과 직접 모이기 어려운 경우 영상통화나 화상 회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구글 미트, 팀즈 등 화상회의, 카카오톡 라이브 톡 등으로 제사·성묘 실시간 중계를 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얼굴을 보며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례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두 번째는 불필요한 제례의 형식을 더는 것이다. 최근 생겨나고 있는 사이버 추모관인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의 온라인 성묘·추모 서비스나, 밀키트와 간편식을 활용한 차례상 차리기 등이 있다. 또한 대면한 적이 있는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등 과도한 허례허식을 제외한 제례를 지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와 형식이 다름을 일컫는 단어, ‘가가례’를 기억하자. 전통에 따른 방식이더라도 각자의 상황에 맞춰 수정해서 명절을 보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전통 속에 담긴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조상을 기리려는 마음이다. 마음이 담겼다면 어떠한 형식으로든 좋다. 앞으로의 명절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서로의 마음을 담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