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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상

[시 부문 심사평]

  • 작성일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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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4267
이은민

  이번 공모에는 다양한 시적 개성과 감수성을 담은 작품들이 다수 접수되었다. 학생들은 각자의 전공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위의 사물, 공간,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며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진지한 창작 의지를 보여주었다. 작품을 읽어나가며 수많은 길목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숨고르기를 하는 상념의 시간들, 숨어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 사물의 깊이와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을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다양한 현재적 감정과 고민들, 꿈, 삶과 사랑,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는 글들이었다.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어 심사 과정에서 고민이 필요했으며, 그중 표현의 완성도와 사유의 깊이, 이미지의 독창성을 중심으로 당선작, 가작, 입선을 선정하였다. 


  먼저 정진용 학생의 작품 5편 중 「터지지 않은 척」과 「말의 죽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말의 죽음」은 말이 타인의 해석에 닿는 순간 죽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언어와 존재, 타자 이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과도한 수식이나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행들만으로 단단한 사유의 구조를 세워 읽는 이로 하여금 언어의 본질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특히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만든 나일 뿐 / 나는 거기에 없다”와 같은 문장은 관계 속에서 왜곡되는 자아의 문제를 명확하고도 매혹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터지지 않은 척」은 담백한 언어 아래 감정의 균열을 정교하게 숨겨둔 구성이 돋보였고 “터질 때까지 웃는 풍선”과 “어른이 된다는 건/ 웃음을 다 쓰고도 떠오르는 일”을 대조적으로 놓은 비유가 성장과 성숙에 대한 사유를 담은 이 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다. 전체 출품작 중 사유의 밀도와 완성도가 가장 높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류민승 학생의 「정류장」은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정류장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다양한 이미지로 확장하는 상상력과 형상화 능력이 돋보였다. “자갈이 된 아스팔트/ 모래가 된 콘크리트/ 황토가 된 붉은 벽돌은 모두/ 정류장이었어”같은 표현은 일상적 공간이 부서져내리는 심리적 풍경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섬세한 감각과 정서적 응집력,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이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가작으로 결정하였다. 


  지재현 학생의 「0과 1 사이」는 입선으로 선정하였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진법적 세계에서 흔히 비어 있다고 여겨지는 0과 1의 사이에 복잡한 감정, 인간적 흔들림의 미세한 결을 부여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새벽 세 시,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어느 쪽도 아닌 것이 된다”와 같은 문장은 감정의 회색 지대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않은 작품들 또한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었으며, 관계의 균열, 그로 인한 고독과 슬픔, 현재나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 일상의 사물을 통한 정서 표현 등을 다룬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일부 작품은 이미지의 집중력이 다소 분산되거나, 추상적 정서를 구체적 장면으로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상징이나 발상은 좋았으나 표현이 너무 진부하여 아쉬움을 느끼게 한 경우도 있었다. 몇몇 작품은 비록 수상을 하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정서와 사유를 균형 있게 배치하는 훈련을 이어간다면 더 훌륭한 작품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공모를 통해 학생들이 시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표현하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창작자로서의 중요한 첫 걸음임을 강조하고 싶다.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한국언어문학전공 김지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