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SPECIAL

제 1 호 불편한 잠재적 사회적 소수자

  • 작성일 2018-12-05
  • 좋아요 Like 1
  • 조회수 4069
주채현 (dongmak52@naver.com)




  “다음 생에 성적 소수자나 이주민,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질문 속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회에는 이러한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거나 삶의 방식 또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후천적으로 구별하여 ‘비정상’이라고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대개 사회에서 비정상인 사람들로 여겨지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 비교해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특히 유교문화와 색깔이 강했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시대의 통념과 다른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흥선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부터 시작해 왼손잡이를 부정하고 동성애 논란까지 시대의 통념과 어긋난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그래도 21세기 현대에 들어와서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교 문화를 겪은 세대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간의 혼란 속에서 통념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소수자들은 굉장히 험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통념을, 즉 우리가 우리만의 기준을 세워 소수자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역사에서 시대별로, 나라별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집단은 언제나 다양하게 존재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도 역시 어느 형태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정반대의 삶
서양에서도 이러한 차별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1년 음악가 솔로먼 노섭은 당시 대다수 흑인과는 달리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자유인으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높은 보수를 주겠다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만취 상태에서 인신매매꾼들에게 납치가 된다. 폭행과 고문에 의해 음악가 솔로먼 노섭에서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가 된 그는 12년간의 악몽 같은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노예 수입이 금지된 1807년까지 노예 선에 오른 아프리카인은 약 5-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4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은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사망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에도 흑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의 작가이자 인권 활동가인 ‘존 그리핀’은 피부과 전문의의 협조로 색소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으로 피부색을 검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흑인이 되어 약 한 달간 미국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핀은 단지 피부색 하나만 변했을 뿐인데, 그동안 누려온 모든 상황이 끝났음을 처절하게 느끼게 된다. 매일매일 자유와 권리가 빼앗기는 삶, 백인들의 증오와 성적 모욕감으로 가득한 삶으로 그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흑인으로서의 피폐한 삶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잡지에 글을 싣고 책을 출판했다.
단지 피부색이 까맣다는 이유로 우리는 흑인보다 백인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당장 해외에 나가는 순간 우리는 ‘Yellow Monkey’라고 비아냥거림을 받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흑인들은 꿋꿋이 겪어왔던 어려움을 이전부터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자들은 이렇게 단순히 사회적 약자로 규정받고 그러한 존재로만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수집단으로서 당하는 불리함을 인식하고 그것에 항거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 상황을 개선해 오며 살아가고 있다.




이해는 바라지도 않아요
“혹시 국물 베이스가 어떻게 되나요” 채식주의자 친구와 함께 식당을 방문하자마자 친구가 했던 질문이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무슨 국물 재료까지 따져”라고 얘기했는데 그러자마자 말다툼이 일어났다. “너는 몰라, 우리나라에서 나 같은 채식주의자들이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
나는 오직 비인도적인 축산 및 도축 거부, 즉 윤리적인 이유로만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 건강상의 이유, 혹은 심리적, 경제적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것도 다양하게 세미, 페스코, 락토, 비건 등 스스로 통제하는 신념 안에서 채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난다. 채식주의자라고 소개받은 후 나는 연거푸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맛있는 치킨은 꿈도 못 꾸겠네” “김말이는 먹어” 때로는 짓궂게 그 친구가 먹고 있던 국물에 내가 먹던 고기를 넣어 아예 먹지 못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에이 뭘 고기 한번 담갔다고…….’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나 같은 사람들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사회에 통념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별 대수롭지 않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수자들에게는 그러한 얘기가 그들의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힐지도 모른다. 그들 본인이 지키고 있는 신념과 기준을 우리가 멋대로 짓밟고 있다.
소수자들은 한 소리로 “이해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오해만 안 받고 살아도 좋겠다”고 외친다. 온갖 편견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고 이 또한 다양한 삶의 모습임을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때
TV토론에 성적 소수자로 알려진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성적 소수자가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그의 의견은 의심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사회적 약자는 그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다양한 사회적 자원들 동원하여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약 이들이 타인과 구별되고 힘이 없더라도 차별받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공공연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므로 소수자들은 삶이 힘들다고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서러움을 안고 사회에 나오더라도 이미 소수자라는 딱지가 붙은 순간 모든 손발이 묶이게 된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내가 미술 수업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선생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이다. 그런데 매우 실력이 뛰어난데도 그 사람이 장애인이거나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치명적인 사회적 차별이 된다.하지만 사회적 약자는 상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가 있다. 90분간 빛이 없는 어둠 속을 걸어서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에 의존하여 미로를 지나가는 전시회인데, 이 속에서는 누가 과연 사회적 약자일까? 만약 시각 장애인과 함께 이 공간을 지난다면 비시각장애인은 장애인이 될 것이며, 시각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될 것이다.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 온 이주 노동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사회적 약자에 벗어나고, 내가 외국에 가면 나는 사회적 약자가 될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와사비테러로 논란이 되었던 혐한사건에 우리는 굉장히 분개하고 역정을 내면서, 서울 명소에 갔을 때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모습에 우리는 감정에 미동도 없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론에 언급했듯이, 어느 시점에서 우리도 어느 형태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소수자들은 소리 높여 얘기한다. ‘채식주의자 누구’, ‘동성애자 누구’ 가 아닌 ‘인간 누구’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들도 우리와 취향과 기준만 다를 뿐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와 다른 것’은 경우와 정도에 따라서 괜한 반감을 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단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봐 주면 어떨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단지 ‘취향’만 다른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소수자라고 해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이 세금을 내고, 의무를 다하는 이들에게 걱정 어린 시선이 아닌, 그냥 똑같은 시선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나 혼자 살아가기도 벅찬 세상에서 그들에게 당신이 보내는 연민과 동정의 눈길은 오히려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여전히 불평등하고 존엄성이 없는 지금의 사회이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관점을 바꾸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