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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674 호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 아니라고?

  • 작성일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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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183
이희수

최초의 한글소설이라고 알려진 홍길동전에 대해 최근 저자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이 등장하면서 이 논란이 공론화되었다.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허균의 홍길동전이라고 배웠던 이 작품이 왜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함께 알아보자. 

(출처 : 세계일보)

한문본 『홍길동전』의 발견

지난 24일, 이윤석(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교수는 400여 년 전 조선 중기 문인이 지은『홍길동전』 한문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한문『홍길동전』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며 한글 홍길동전과는 그 내용이 다르다. 지소 황일호가 지은 홍길동 일대기의 이름은 『노혁전』으로, 『지소선생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노혁전』은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이며 저자가 허균이라는 통념과 배치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자료가 밝혀지기 이전부터 『홍길동전』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이 이어져 왔다. ‘『홍길동전』의 진짜 저자는 누구인가?’가 그 논쟁의 중심으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를뿐더러, 학교 교육에서 허균이 그 작자라고 배워왔기에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홍길동전』의 저자를 허균이라고 알고 있을까? 이와 관련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홍길동전에 의문을 제기한 책인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이윤석 교수 저)를 바탕으로 알아보았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가가 아닌 근거

우선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홍길동전』에는 허균 사후의 인물과 관청이 등장한다. 소설 속 길동은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출세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라 더러운 이름이라도 남기겠다고 말한다. 그 예로 든 사람이 바로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이다. 이 내용은 거의 모든 이본에 나오므로, 창작 시점부터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 장길산은 1690년대부터 이름이 알려진 도둑이지만, 허균이 죽은 해는 1618년으로 약 70년 전이다.
더불어 작품에 등장하는 선혜청이라는 관청의 이름 또한, 처음 설치된 것은 1608년이지만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1709년이다. 작품의 내용 이외에도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첫째, 『홍길동전』과 같은 형식의 한글소설은 1800년 무렵에 나타난다. 특정한 형식의 예술작품은 특정한 시기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으로, 허균이 살았던 1600년 무렵에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다. 둘째, 허균이 한글로 소설을 쓸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셋째, 191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홍길동전』은 현재 수십 종 이상이 남아있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 중 어떤 것이 원본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이본은 모두 19세기 중반 이후 나온 것으로, 허균 사후 2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홍길동전』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그 과정을 밝힐 수 있어야 허균이 그 작자라는 논의를 할 수 있다. 이렇기에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라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홍길동전』의 작자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고 알려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한글 고소설은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홍길동전』의 경우, 학교 교육에서 그 작자를 허균이라고 가르치므로, 많은 사람들이 허균 스스로 『홍길동전』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허균 자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말이 없고, 현존하는 30여 개의 이본 가운데 작자가 허균이라고 명시된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균이 작가라고 말한 최초의 인물

최초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다카하시 도루이다. 그는 1927년 11월, 「조선문학 연구-조선의 소설」이라는 글에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밝혔다. 다카하시는 『택당집』의 ‘홍길동전’ 관련 내용을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그는 “허균은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을 지었다.”라는 대목의 ‘홍길동전’을 『홍길동전』과 같은 내용의 소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카하시에게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고 배운 여러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은 후에 한국문학 연구의 1세대가 되어 이 내용을 세상에 전하기 시작한다.
다카하시 이전의 사람들이 『택당집』의 ‘홍길동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이식이 한문으로 쓴 『택당집』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는 책이었다. 두 작품의 독자는 명확하게 다른 계층이었으므로, 『택당집』과 『홍길동전』을 함께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둘을 함께 논의하는 것은 경성제국대학 설립 이후 조선 문학 강좌가 개설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 시기 조선 문학을 가르치던 다카하시는 한문에 능통했고, 조선어도 유창했으나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지식을 문헌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택당집』의 ‘홍길동전’과 『홍길동전』을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 지식인이 한글로 소설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허균은 한문으로 ‘홍길동전’을 썼고, 이를 후에 누군가 한글로 옮긴 것이 한글 『홍길동전』이라고 생각했다. 두 작품이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 허균이 지었다는 ‘홍길동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심지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 것인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허균의 ‘홍길동전’의 내용을 비교해볼 수도 없으므로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말할 수 없다. 

홍길동전의 변치 않는 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를 두고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홍길동전은 저자가 누구든 그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반 지식인이 한문으로 쓴 글 가운데 적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많이 있지만 그들의 어떤 글에서도 적서 차별을 몸으로 깨부수고 왕이 되는 서자의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홍길동전』에서는 우리가 모두 알 듯 서자인 홍길동이 적서 차별을 깨부수고 직접 율도국의 왕이 된다. 이점에서 『홍길동전』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사용하던 한문이 아니라 천대받던 한글로 썼다는 점은 저자가 누구든 변치 않는 작품의 가치이다. 두 번째로는 『홍길동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제기되는 논란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허균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으로 이야기해온 지난 100년의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홍길동전』을 쓴 이름 모를 작자와 그것을 즐겼던 서민들에게 이 소설을 돌려주어야 한다.

(출처 : 네이버 포스트 아네마사나)

이희수 기자윤소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