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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2020호외-2 호 [기획] 5월에 핀 민주화의 꽃, 광주에 떨어진 그 꽃잎을 찾아서

  • 작성일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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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주

  1980년 5월, 많은 이들이 희생당하고 또 많은 이들의 민주 정신을 일깨웠던 ‘5·18 민주화 운동’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하였다. 40주년을 기념하여 5·18의 발생지였던 광주에서는 5·18이 어떻게 기억되고, 그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직접 취재해보았다. 지금부터 5월에 활짝 피었던 민주화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도록 하자.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 붕괴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집회와 시위가 전국단위로 광범위하게일어났다. 5월 15일 서울역에서 학생과 시민 15만 명이 시위를 위해 모였으나, 신군부 세력의 위협으로 인해 시위대는 해산하게 되고, 이에 계엄사령부는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 및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한편, 광주에서는 시위대가 붕괴돼버린 서울/경기, 부산/경남 지역과는 달리, 시위대 간부 상당수가 체포를 피한 덕분에 시위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광주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를 막기 위해 전북 금마에 주둔하고 있던 7공수부대가 1980년 5월 17일 저녁 10시경 광주에 투입되었다. 무장 계엄군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였고, 이에 맞선 학생들과 시민들의 항쟁이 대학가와 금남로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지금도 광주엔 그 시대의 역사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아픔이 묻어있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광주의 노력

- 희생자들이 잠든 ‘국립 5·18 민주묘지’

  국립 5·18 민주묘지는 당시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의 넋을 기리고, 더 나아가 희생자들의 묘역을 민주 성지로 가꾸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5·13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해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97년 묘역 조성 공사가 완공된 후 2002년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종일 흘러나온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 이후 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로, 점차 민주화 운동의 상징곡으로 확대되어 불리게 됐다. 국립 5·18 민주묘지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이 노래에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립 5·18 민주묘지의 참배코스는 민주의 문 → 민주광장 → 추념문 → 참배광장 → 5·18 민중항쟁추모탑 → 제1묘역 → 유영봉안소 → 추모관 → 역사의 문 → 역사광장 → 제2묘역 → 5·18 구묘의 순서로 구성되며, 이 코스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둘러보아도 괜찮다. 

▲순서대로 시민들의 리본 메시지, 40주년 추모제 행사 현수막

  국립 5·18 민주묘지로 향하는 길목에는 시민들의 리본 메시지가 길을 따라 쭉 걸려있다. 리본에는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글로 쓰여 있다. 국립 5·18 민주묘지 입구에서 리본을 받아 직접 글을 쓸 수 있으며, 길목에 수놓은 메시지들을 들여다보면 희생자들을 향한 시민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5·18 민주묘지에서는 5·18 민중항쟁 제40주년을 맞아 5월 17일 오전 9시 30분에 추모제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순서대로 추모탑, 시민들의 추모 장면, 희생자들의 묘

  참배광장을 지나면 보이는 5·18 민중항쟁추모탑 앞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가 이루어진다. 여러 단체 혹은 개인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그들을 기린다. 추모탑 주변을 가득 채운 향냄새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국선열 및 호국명령에 대한 묵념 곡을 듣고 있으면 희생자들을 향한 애도의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추모탑의 뒤편에는 제1묘역이 조성돼 있고, 묘지 앞에 위치한 수많은 비석에는 희생자들의 앳된 사진과 이름, 그리고 짧은 글귀가 쓰여 있다. 수많은 묘지와 비석들을 처음 마주한 순간, 처음에는 눈으로 보이는 묘지와 비석의 수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참혹했던 그 날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져 씁쓸해졌다. 5·18과 관련한 피해자의 수는 5,817명으로, 당시 사망자는 165명, 행방불명자는 84명, 구속연행 및 상이자는 5,568명, 무연고는 5명이다. 이 수의 일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순간 ‘참담함’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 광주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애도의 마음, ‘5·18 기념공원’

  5·18 기념공원은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5·18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한 의지가 담긴 공간이다. 공원 내에는 기념문화센터, 현황조각, 추모승화공간, 오월루 등 5·18 관련 시설물과 공원기반시설이 들어서 있어 공원 내를 산책하며 이따금 현황조각을 바라보는 광주시민들을 목격할 수 있다.

▲순서대로 5·18 현황조각, 추모승화공간, 희생자 명단

  5·18 기념공원 내에는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5·18 현황조각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각 뒤에는 추모승화공간으로 향하는 길이 마련돼 있다. 지하에 마련돼 있는 추모승화공간에는 5·18관련 피해자들의 명단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넓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명패들은, 그 수가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마음이 아파진다.


-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5·18 자유공원’

▲순서대로 5·18 자유공원 비석, 들불열사 기념비

  5·18 자유공원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일부 정치군인들의 강경 진압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자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복원·재현한 곳이다. 5·18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과 5·18 당시 임시로 협동수사반 심문실과 고문실로 사용되었던 헌병대 중대내무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자들이 구금되었던 영창 등이 복원돼 있다. 이곳에서는 5월 15일부터 24일까지 5·18 민중항쟁 제40주년을 기념하여 영창·법정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체험행사에서는 군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당시 군인들이 행했던 언행을 그대로 재현하며 시민들을 통솔한다. 물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강압적인 말투를 듣고 있으면, 당시 학생들과 시민들이 느꼈던 공포감과 위협감을 일부 느껴볼 수 있다. 


-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순서대로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외관 모습, 당시 상황을 표현한 전시물

▲순서대로 당시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광주은행 옛 본점의 유리창, 희생자들의 유품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영구보존하여 5·18의 역사적 의미를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그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5·18관련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보관한 곳이다. 일기장, 성명서, 취재수첩 등의 문서 자료뿐만 아니라 사진, 필름 등의 사진 자료를 비롯해 음향, 모형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당시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유리창을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에 그대로 남아있는 총탄의 흔적을 통해 당시 무장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행했던 무자비한 폭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시실에서는 당시 희생자들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 팔찌, 입고 있던 옷 등을 볼 수 있는데, 멈춰있는 깨진 시계와 피로 물든 옷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참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 일상생활 속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518번 버스’

▲순서대로 518번 버스, 버스 안 안내 문구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518번 버스는 위에서 설명한 5·18 사적지를 포함해, 5·18 주요 사적지 10여 곳을 지나가는 버스이다. 노선에 5·18 주요 사적지가 많이 포함돼 있던 25-2번 버스를, 5·18을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2004년에 518번으로 번호를 바꾼 것이다. 작년에는 5·18을 기념하여, 광주와 대구의 ‘달빛동맹’에 따라 광주 시내버스 151번을 228(대구 2·28민주화운동)번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이처럼 5·18 민주화 운동의 발생지 광주에서는 5·18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들의 민주정신과 5·18의 의의를 잊지 않고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5·18의 의미와 가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권의 진실에 대한 왜곡과 은폐로 인해서 5·18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많은 이들이 5·18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아직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남아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광주의 노력을 살펴보며 희생자들의 고통과 그들의 민주 정신에 대해 알아보고 올바르게 인식하길 바라며, 민주화를 향한 학생과 시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그들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방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