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6 호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공식전 한국 상륙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공식전 한국 상륙
정체불명의 예술가이자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많은 것들을 비꼬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모순적인 현상을 그대로 체감시키는 그만의 예술 행위는 아주 독특하다. 도시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거리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높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예술, 정치, 사회 등등 다양한 이슈들을 그만의 시각으로 전달하고 있는 뱅크시의 작품세계를 만나 본다.
익명의 예술가, 뱅크시
뱅크시는 항상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작품을 만들고 사라지며 인터뷰를 통해서 대면한 사람도 극소수일 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이다. 어디에서도 뱅크시의 신상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예술 테러리스트라는 그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강화하는 듯 보인다.
▲ 박물관에 그림을 몰래 전시 중인 뱅크시 (사진 : 곽민진 기자)
익명성을 지키는 동시에, 공공장소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려면 속도가 생명인 까닭에 그는 판에 구멍을 뚫고 물감 등을 통과시키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한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아무도 그림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현재는 벽에 그림이 그려지면 당장 보존하고 팔아대기 바쁘다. 실제로 최근에 그의 작품이 1시간도 안 되어 도난당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대중의 모순적인 태도 변화 역시 그가 비판하는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흥미롭다.
사회 전체에 물음을 제기
그의 작품은 예술계를 비판하는 것에서 나아가 반전, 반권위적인 성향도 띠고 있다. 기존의 예술이나 사회 권위를 비판하는 예술을 '제도 비판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의 대다수의 작품은 아주 직관적인, 더 나아가 파격적인 묘사로 사회 전체를 비판한다. 기존의 권위나 사회에 굴하지 않는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간혹 숨을 들이켜게 된다. 권위나 자본주의적인 세태의 비판 외에도 예술을 돈벌이 수단이자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대중들을 비판하는 작품들 역시 제법 찾아볼 수 있는데, 화제가 된 작품을 분쇄기에 반쯤 갈아버린 영상이 떠오른다.
▲ 해당 영상 및 전시회 당시 묘사 (사진 : 곽민진 기자)
뱅크시는 2018년 10월 경매에서 '풍선을 든 소녀'가 104만 2천 파운드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에 장치해 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해 그림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적 있다. 뱅크시를 홍보하는 마케팅 영상으로 자주 활용되어 아주 유명해진 퍼포먼스다.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적인 미술시장이 덧없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평가된다. 당시 퍼포먼스를 보고 깊게 생각하기보단 당장의 작품값이 오를 것이라며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 환호하는 대중 모두가 마치 그의 작품세계 자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당 작품 영상은 그림, 파쇄 퍼포먼스 이상의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뱅크시의 첫 공식 한국 전시회
▲ 그라운드 서울 리얼 뱅크시 전시회 (사진 : 곽민진 기자)
이렇듯 개성 넘치는 행보의 신비주의 아티스트, 뱅크시의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우리 대학과 가까운 서울의 문화거리인 인사동 그라운드 서울(옛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는 뱅크시의 25년간 작업 행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명작 모음 전시다. 한국에서는 수년간 뱅크시 전시가 여러 차례 열렸지만, 대부분 공식적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리얼 뱅크시는 확실한 공인 전시이며, 국내외 뱅크시 관련 전문 큐레이터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전시를 기획한 그라운드 서울은 이번 뱅크시의 전시는 작가가 관여한 ‘페스트 컨트롤’의 인증 작품들로 구성된 정품 전시란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리얼 뱅크시, 인상적인 작품들의 연속
▲ 잭앤질 (사진 : 곽민진 기자)
풍선을 든 소녀와 함께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인 ‘잭앤질’은 부모와 사회에서 지나치게 통제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과거 뱅크시는 그의 저서에서 아이들의 부모는 그들(아이들)이 그들 자신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외에는 무엇이든 해줄 것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그의 발언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현재의 교육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 사랑은 공중에(꽃을 던지는 사람) 과 날고 있는 군인 (사진 : 곽민진 기자)
뱅크시는 여러 작품을 통해 전쟁의 종말과 평화에 대해서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전쟁이 연상되는 요소와 꽃이나 미소, 소녀 등 대치되는 요소들을 작품 속에 함께 배치해 모순점을 더욱 부각하는 형식이 자주 보인다.
▲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사진 : 곽민진 기자)
평화에 대한 메시지만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다. 자본주의의 잔혹성과 동시에 자본과 소비에 매몰되어가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그의 작품들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자본주의 사회 속 집착과 과시욕, 그 안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 디즈멀랜드 전시 (사진 : 곽민진 기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인 디즈멀랜드. 이번 전시회에서도 디즈멀랜드에 대한 설명과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디즈멀랜드는Disneyland와 Dismal을 합해 만든 합성어로 디즈니 안티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서 나오는 디즈멀(Dismal)은 '음울한'이라는 뜻이다. 어린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놀이공원, 이 모순적인 곳은 디즈니랜드와 사회상을 비꼬는 암울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정말 많은 예술가들이 동원된 작품 인만큼 각 조형물이나 디테일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만의 기묘한 유머 코드로 바라본, 동심과 자본주의의 결정체 디즈니랜드는 아주 모순적이나 그렇기에 ‘뱅크시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뱅크시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의 작품 (사진 : 곽민진 기자)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뱅크시라는 아티스트의 역사를 보여주자는 취지인 만큼 그가 영향을 주고받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의 연대기와 함께 바라본 작품들은 그만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뱅크시 기념품샵 (사진 : 곽민진 기자)
그의 작품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전시의 끝을 마주하게 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풍선을 든 소녀가 반쯤 갈려 나간 잔해를 헤치고 나간 곳에는 기념품 샵이 자리하고 있다. 해당 판매관은 전시를 관람하지 않더라도 방문이 가능하다. 다양한 엽서, 그립톡, 문구류 등이 뱅크시 작품들과 접목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옷이나 서프보드, 스케이트 보드 같이 특이한 상품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소비 이상의 가치, 다시 생각해 보는 리얼 뱅크시
리얼 뱅크시 전시는 10월 20일까지 진행되니 관심 있는 학우들은 한 번쯤 찾아가 보면 좋을 것이다. 그만의 파격적인 유머 코드는 마치 머리를 맞은 듯한 타격감과 함께 유쾌함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스스로와 현재 사회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이 소비 이상의 가치를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뱅크시는 말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곽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