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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681 호 '엉터리 존댓말',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슬픈 아이러니에 대해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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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7809
방효주

엉터리 존댓말’,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슬픈 아이러니에 대해


- “손님주문하신 메뉴 나오셨습니다.” “할인 적용되셨습니다.” “이 메뉴는 주문이 안 되세요.”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은 모두 잘못된 높임표현으로 실제 많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험한 이른바 엉터리 존댓말이다주로 어떤 잘못된 높임 표현을 사용하는지엉터리 존댓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높임 표현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 잘못된 존칭표현을 사용해 화장품을 설명하는 직원 (출처: 채널A)


● 일상 속 엉터리 존댓말의 대표사례, '사물 존칭

상대를 존중하는 표현인 존댓말하지만 지나친 존댓말즉 잘못된 높임 표현은 오히려 독을 가져온다특히 수많은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업계에는 잘못된 표현이 굳어진 높임 표현 사례가 많다그중 요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표현을 찾아보았고실제로 점원과 고객의 입장에서 잘못된 존댓말을 자주 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에브리타임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잘못된 높임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있나요?/손님의 입장에서 잘못된 높임 표현을 들으신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85.7%있다라고 답했고, ‘있다라고 답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표현을 쓰셨나요?/들으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오셨습니다(주문한 상품이 나왔을 때).’, ‘-에 있으세요(사물의 위치를 알려줄 때).’, ‘-포장이신가요?’, ‘-원 나오셨습니다(계산할 때).’ 등의 표현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답했다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사물 존칭으로사람이 아니라 사물을 존대하는 엉터리 존댓말이다문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무조건 높임말을 쓰려다 보니 주술 관계나 맥락을 무시해 사용되는 표현이다.


아르바이트 공식 포털 알바몬에서도 올해 한글날잘못된 높임 표현 사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아르바이트생 중 78.6%가 커피메뉴 등의 사물에 존칭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공감하는 엉터리 존댓말 순위로는 그 메뉴는 안되세요(39.4%)’, ‘이렇게 하시면 되세요(36.4%)’, ‘주문되셨어요(28.3%)’가 꼽혔고 이어, ‘좋은 하루 되세요(26.8%)’, ‘이쪽에서 기다리실게요(24.8%)’, ‘주문하신 식사 나오셨어요(19.1%)’, ‘그건 저한테 여쭤보세요(11.1%)’, ‘주문하신 음료 가져가실게요(8.7%)’, ‘이번에 나오신 신상품이신데요(7.2%)’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공감을 얻은 이상한 존댓말들이었다엉터리 존댓말을 사용해 봤다는 아르바이트생 중 그것이 잘못된 표현인 줄 모르고 썼다는 응답은 19.6%에 그쳤고, 43.4%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손님 때문에또는 극존칭에 익숙한 손님을 위해 사용했다고 답했다결국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이 이상한 존댓말을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압존법이중 존칭도 지양해야 할 표현

사물 존칭 외에 압존법도 잘못 사용할 경우엉터리 존댓말이 된다압존법은 높여야 할 대상이지만 듣는 이가 더 높을 때 그 공대를 줄이는 어법으로 할아버지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압존법은 가족이나 사제 간 같은 사적 관계에서 청자 중심주의가 적용되는 높임 표현이다라며 사업체 등 직장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라고 한다하지만 군대와 일부 기업에서는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예를 들어 대대장님소대장이 시켰습니다.’, ‘사장님 부장님 왔습니다.’의 표현이다압존법은 과거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구시대적 표현이라는 지적과 함께 현재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그러나 군대나 회사 등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회의 수직적인 구조에서는 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논란이 많은 높임법으로는 과도한 의 사용과 ‘-도와드리겠습니다.’ 등의 표현이 있다과도한 의 사용은 대통령’, ‘고객’ 등 이미 높이는 표현에 을 붙여 대통령님’, ‘고객님’ 등 이중으로 존칭 사용을 하는 것이다. ‘-도와드리겠습니다.’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와 같이 손님이 결제하는데 직원이 무슨 도움을 주는 것이지?’하고 듣기에 따라서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표현이다


 ▲ 지나친 고객 주의가 나타나는 프랜차이즈의 고객만족 10계명 (출처: 채널A)


▲ 맥도날드 직원에게 햄버거를 던지는 ‘갑질’손님 (출처: 유튜브)


● 알고 있음에도침묵하는 이유

앞선 설문조사 결과와 논란이 되는 높임표현들을 살펴보았을 때 잘못된 존칭 표현은 대부분 고객과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잘못된 사물 존칭을 매뉴얼로 삼고 있기도 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아서 고객을 대응해야 한다는 매뉴얼도 있다존칭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잦은 클레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진행한 설문조사 답변 중에서도 사물 존칭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높이지 않으면 손님들이 항의한다.’라는 답변이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손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나와도 저렇게 밖에 대응을 못하니까 갑질을 해도 상관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고객의 '갑질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던 고객이 말투가 거슬려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사라진 갑질’ 사건이 이 우려의 표본이기도 하다


● 시작은 '고객 제일주의''갑을관계의 타파

엉터리 존댓말은 한글 어법 파괴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의 기분과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이와 같은 문제들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우리말 표현임을 알고 있음에도 사용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아르바이트생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서비스 업계의 고객 응대 매뉴얼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이병관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교수는 고객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서도 매뉴얼을 가지고 제도화된 대응이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 서비스 직원에게 책임이 전가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무작정 고객의 대우만 중요시하는 지나친 고객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존대의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직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따라서 잘못된 매뉴얼부터 고치고 올바른 높임 표현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맥도날드 사건과 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갑질’ 사건에 대한 대응책도 구체적인 매뉴얼로 마련해야 한다또한 손님의 입장에서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쓴다고 비난하거나사물 존대 표현을 남용하는 것의 책임을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돌려서는 안 되며 그전에 자신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에 상응하는 존중의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송수연, 방효주 기자